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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부채 원금 일부라도 갚았으면...아내와 여행 한 번 다녀오고 싶다."
"농가부채 원금 일부라도 갚았으면...아내와 여행 한 번 다녀오고 싶다."
  • 노재하 기자
  • 승인 2015.01.28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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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2015 희망을 말하다 ②김상범(거제농민회 회장)

2015년 을미년 청양의 해, 거제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은 어떤 소망을 안고 있을까? 노동자, 농민, 어민, 자영업자 등 각 계층별 10명의 시민들을 만나 이들이 말하는 새해 희망을 전한다. 두 번째 순서는 농사꾼이자 마을이장인 김상범(57, 거제농민회 회장)씨다.(편집자)

쌀시장 개방과 잇단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농민들의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최근 농촌은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층 비중이 급속히 높아져 경작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작년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농가 및 어가경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에서 농업 비중과 곡물자급률은 2013년 각각 2.1%, 23.1%로 낮아졌다.

또 도시근로자 평균소득 대비 농가소득은 1990년 97%에서 2013년엔 62%로 크게 떨어졌다. 특히 농가소득 중 농사로 버는 농업소득은 10년전 1249만원에 비해 2013년 1000만원으로 하락했다.

우리 지역의 농가도 예외없이 노령화와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앞으로 어려움이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22일 김상범 거제시농민회장을 찾아 거제 농업의 현실과 새해 바람을 들어 봤다.

쌀 농사도 짓고 소도 키우고 마을이장 일도 맡아

이날 인터뷰는 김상범 농민회장의 친구이기도 한 해범 진영세 선생의 ‘다묵선실’에서 차를 마시며 이루어졌다. “전체적으로 농업이 어려운 환경인데 부춘마을은 어떠냐”고 물었다.

김 회장은 “거제라고 다르겠냐.”며 “농촌에서 농민으로 살아가는 게 팍팍하기는 마지가지.”라고 했다. 그는 “거제시의 1인당 시민소득이 4만 달러에 육박한다지만 이곳 부춘마을이 45가구 정도 되는데, 대부분 노인들로 홀로 사시는 할머니들이 많다.”고 마을을 소개했다.

김 회장은 고령화로 인해 실제 경작이 어려운 이웃들의 논까지 합해 150마지기 정도를 아내와 함께 쌀농사를 짓고 있다. 하지만 쌀농사만으로는 아이들 학비조차 대기가 쉽지 않다며 한우 60여마리를 키우고 있는 억척스런 농부다. 이처럼 바쁜 농사일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 부부는 마을에서 제일 젊다는 이유를 들어 5년째 이장과 부녀회장을 맡아 동네일을 돌보고 있다.

"쌀값은 18년 전과 비슷, 자재값은 배 이상 올라...인건비 건지기도 쉽지 않아“

150마지기(30,000평, 100,000㎡ 규모)에 이르는 꽤 넓은 논을 경작해서 생산되는 쌀 수확량이면 농가소득도 상당할 것이라 여겨 ‘소득’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그는 “시중 쌀 시세가 18년 전과 비슷한 수준인데, 퇴비·농기계 등 자재 값은 배 이상 올랐다.”며 “아내와 함께 둘이서 억척같이 농사를 짓고 있지만 최소한의 인건비조차 건지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거제에서 생산한 쌀은 대부분 정부에서 11월에 공공비축미로 수매한다. 1월초 정부가 발표한 2014년 공공비축미 매입가격은 포대벼 40㎏ 기준으로 특등품 5만9640원으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 2013년산 매입가격보다 2990원 하락된 가격이다. 더욱이 올해부터 쌀 시장이 전면 개방 되면 농민들의 시름이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잇따르는 자유무역협정(FTA)…소규모 축산 농가 직접적인 타격

김 회장은 쌀농사가 경쟁력을 잃게 되면서 오래 전 소 사육에 나섰다. 사료가격 급등에도 불구하고 60여 마리로 늘려가며 자녀 세 명을 대학까지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축산농가에 비상이 결렸다. 미국에 이어 작년 11월에 호주, 뉴질랜드 등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값싼 수입 쇠고기가 머잖아 시장을 잠식하게 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특히 나 같은 소규모 축산 농가에 집중적으로 타격이 올 것”이라며 “지속적인 사업 유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구제역까지 겹치게 되면 그야말로 헤어날 수 없게 된다.”며 “시에서 빈틈없는 방역망을 구축을 위해 힘써 주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혼탁한 조합장 선거…"돈 선거’ 뿌리 뽑아야"

한 시간 정도의 인터뷰가 이어지는 중에 그는 “소 여물을 줘야 한다”고 했다. 트럭을 타고 마을로 향하는 동안 3월 11일에 실시되는 조합장 동시선거와 관련해 입장을 들어 보았다.

지역 내 어느 조합장 선거를 막론하고 금품선거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혼탁했던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또 돈선거 외에도 상호 비방과 흠집내기의 여파로 지역 공동체에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갈등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그는 조합장에게 부와 명예가 주어지면서 많은 곳에서 자리다툼의 싸움터로 전락되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선관위 위탁관리를 통해 동시선거로 치러지는 이번 조합장 선거에 대해 김회장은 “이번 기회를 통해 ‘돈 선거’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언급하며 “공정선거, 정책선거가 되기 위해서는 후보자 뿐만 아니라 조합원 스스로도 바뀌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쌀 개방 반대… 식량 주권과 국가안보의 문제로 인식해야”
"농가부채 원금 일부라도 갚았으면...아내와 여행 한 번 다녀오고 싶다."

거제농민회는 식량자급형 농업과 농민의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전국 100여 개 농민단체들이 결성한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지역 조직으로 2002년에 거제의 뜻있는 농민 100여명으로 만들어졌다. 정부나 시의 지원을 받지 않는 농민단체로 거제시민단체연대협의회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시민단체와 함께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을 위한 거제운동본부'를 구성해 강연회를 개최하고 쌀시장 개방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 작년 11월에는 경남도청 정문 앞에 나락을 쌓아놓고 '쌀시장 전면개방 저지’ 집회에 김회장을 비롯해 회원 10여명이 참석했다.

2012년부터 거제농민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상범 회장과의 두 시간여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 마지막으로 물었다.  을미년 새해 바람이 무엇이냐고.

“새해가 밝았지만 올해부터 쌀 시장이 전면 개방 소식에 농민들의 시름이 더욱 깊어 질 수밖에 없다. 쌀 문제 만큼은 외국과의 FTA나 협상에 정치적 흥정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는 식량주권과 국가안보에 관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정부가 쌀시장이 전면 개방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개인적으로 농가부채 원금을 일부나마 변제하는 새해가 됐으면 한다. 아내가 농사일에, 시어머니 모신다고 참으로 고생한다. 소 사료를 하루라도 멈출 수 없어 여행 한 번 못 갔다. 올해는 꼭 아내와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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