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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학입시 일등 ․ 서열위주 교육에서 함께하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기고] 대학입시 일등 ․ 서열위주 교육에서 함께하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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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1.1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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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모 더불어민주당 거제시지역위원장

[기고문 : 자녀 셋 둔 아버지가 맞이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대학입시 일등 ․ 서열위주 교육에서 함께하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문상모 (더불어민주당 거제시지역위원장)

 

내일은 2019년 대입을 위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일 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교육을 한다. 하지만 교육이 바로서지 못하면 정반대의 폐단을 낳을 수도 있다. 따라서 국가를 경영함에 있어 가장우선시 되어야 하는 중요 정책의 하나가 바로 교육정책이다.

이제는 일등교육과 서열교육에서 탈피하여 적성과 인성이 중시되는 함께하는 공동체 교육으로 전환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일등교육과 서열교육이 가난 탈출과 일정 궤도에 오르는 역할을 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 그 부작용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동기가 경쟁 상대이자 적이 되고 누군가를 짓밟아야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살벌한 현실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나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주의로 세상은 삭막해지고, 모두가 경쟁자로 둔갑된 세상에서 관용과 배려는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것쯤으로 무시해 버린다. 문명은 발전하는데 인간의 존엄성은 내팽겨 쳐지는 뭔가 거꾸로 가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대학입시의 중요성을 과거 조선시대로 거슬러 가보면, 이 시기 과거시험은 신분 계층의 유지와 상승의 통로 역할을 했다. 그러다 보니 폐단도 존재했다.

시험의 결과가 이후의 인생을 좌지우지 하다 보니 불공정의 유혹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다. 지금과 진배없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균등한 교육기회 보장과 공정한 입시 시스템은 대학입시의 근간이자 원칙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져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입시제도는 16번에 걸쳐 변화되어 왔다.

기본 입시 틀 자체가 완전히 바뀐 것도 다섯 번이다.

이를 보면 [대학별 단독 시험제(1945~1968)] --> [대학입학 예비고사‧본고사(1969~1981)] --> [대학입학 학력고사(1982~1993)] --> [대학수학능력시험(1994~현재)] --> [입학사정관 학생부종합전형(2008~현재)] 으로 변천되었다.

현 대학입시제도를 보면 학생부, 수능(2002년부터 수시와 정시로 구분), 논술, 면접을 변행 시행하여 입시전형 복잡성이 증대되었고, 2014년부터는 입학사정관이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변경되어 시행되고 있다.

교육제도의 변경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시행된 교육제도가 불신을 받았던 데는 불공정과 불합리로 이득을 본 저항세력들이 있었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흔히 선진 교육제도를 언급할 때 핀란드식 교육, 독일식 교육, 미국식 교육을 예로 들곤 한다.

핀란드식 교육은 평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되 각기 다른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개별화된 교수-학습을 제공하므로 성취도가 높다.

독일식 교육제도의 특징은 학생들의 진로를 조기에 결정한다는 것이다. 일반 교육제도와 직업 교육제도로 나뉘어 있지만 상호보완 장치도 마련되어 있어 무엇보다 적성을 중요시 한다.

미국식 교육은 "why"로 시작하는 ‘그룹study’와 ‘debate(토론)’ 형식의 자기만의 논리를 펴는 창의성 수업이 진행된다. 암기위주인 한국의 교육과 차이가 있다.

핀란드식, 독일식, 미국식 교육제도의 장점을 잘 살려 한국에 맞는 이상적인 교육제도로 승화시켜 나갔으면 한다.

초 ․ 중학교 교육 현장에서는 경쟁이나 서열보다는 적성과 인성을 중시하는 ‘함께’하는 교육으로 기조가 바뀌어 가고 있음을 필자는 알고 있다. 하지만 대학입시 제도개선 없이는 헛된 일로 보인다. 더 나아가 학벌과 학연, 지연을 중시하는 사회구조의 변화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의 서열화 된 대학입시는 교육 자체보다는 부와 지위와 권력을 획득하는 수단 내지는 가교역할을 하는 매개체로 변질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 몇 달간 대한민국을 둘로 갈라놓았던 조국 사태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부의 대물림이 교육기회의 대물림으로 옮겨가는 대한민국 특권층의 반칙과 그들만의 주고받기 게임에서 소외되는 약자들의 허탈감의 결과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정부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 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더라도 적용에 있어 공정성과 신뢰성을 잃어버린다면 오히려 분란만 키우게 된다.

필자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중학교 졸업 후 배를 타고 1년 늦게 고등학교에 갔다. 당시 선생님께서 저의 어려운 형편을 아시고 도서관에서 일할 기회를 주셨다.

이때 불교경전 등 인문학 도서 읽기에 심취했다.

삶의 철학과 인성을 인간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성장했다.

교육의 최고의 덕목은 ‘스스로 탐구하고 성찰하는 덕목을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질을 볼 수 있는 눈, 허상을 걷어낼 수 있는 지혜, 스스로 힘을 키워갈 수 있는 바탕이 되어주는 것이 교육이라 생각하기에 아이 셋을 둔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한 번도 공부 잘 하라고 종용하지 않았다. 일등 보다는 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것 같다.

자녀 교육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OECD국가 중 청소년들이 가장 행복하지 않은 나라, 입시 지옥, 스펙 독점, 부모 찬스 등으로 부터 아이들을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 흙 수저의 절망감을 안겨주어서는 안 된다. 억지로 가르치려 해서도 안 된다. 가장 좋은 교육은 스스로 자라도록 해주는 것이다.

필자는 정치가 직업이다.

정치를 하는 이유가 이 땅의 청소년들이 바르게 자라고, 꿈과 희망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내일은 매년 한 번씩 돌아오는 수능일이다.

둘째 녀석이 다시 한 번 대학입시에 도전한다. 한 번 실패를 맛보았기에 떨릴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누구나 맞이하는 수험생들의 도전이다. 또 다른 내일을 위해 힘차게 뛰자구나.

아빠는 끝까지 믿고 응원한다. 사랑한다. 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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