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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백지신탁, '이해충돌 방지'의 좋은 예
주식백지신탁, '이해충돌 방지'의 좋은 예
  • 유태영
  • 승인 2015.03.20 2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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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공직에 나설 때는 영리적 활동을 포기할 의사 있어야


유태영_칼럼위원
변호사(법무법인 희망)

지난 설에 본가에 방문했을 때, 시사잡지를 즐겨보는 한 집안 어른은 월간지 <신동아>에서 거제시장에 관련된 기사를 보셨다며 거제시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저의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이후 검찰 수사를 요구하는 야당의 공동성명에서부터 거제시의 언론중재위 제소와 형사 고소 방침 발표까지, 거제시민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련의 대응이 뒤따랐습니다.

<신동아> 기사는 크게 두가지 사실, 즉 덕곡일반산업단지 예정지 중 상당 부분이 권민호 거제시장과 (주)진명이 소유하고 있는 점과, 「공직자윤리법」 제14조의4에 따라 거제시장은 본인이 소유한 (주)진명의 주식 66,621주(전체 주식의 약 46%)을 금융기관에 백지신탁하고 금융기관은 이 주식을 6개월 안에 처분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백지신탁만 이루어지고 주식매각이 이루어지지 않는 점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덧붙여 기자와의 일문일답에서 거제시장은 “내 소유니까 (매각을 해도) 나와 합의를 해서 매각을 해야 하는데, 살 사람이 없다”, “...내가 시장직에 있는 동안 신탁만 하는 것이 아닌가. 내 사유재산에 대해 왜 기자에게 설명해야 하나”라고 답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에도 농협중앙회 홈페이지에는 2015년 1월 기준 매각대상 주식백지신탁 내역으로 (주)진명의 주식 66,621주가 게시되어 있습니다.

거제시장 명의로 소유한 부동산이야 사인의 재산권 행사를 위해 보호 받을 가치가 있으므로, 시민으로서는 매년 3월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공개하는 공직자등록재산 목록을 확인하며 시정을 감시할 뿐입니다.

하지만 2005년 11월 공직자윤리법 개정으로 도입된 주식백지신탁 제도는, 공직자 개인의 주식 보유에 관련한 사익과 공익의 충돌을 공직자 스스로 해소하도록 하여 공직에 전념하겠다는 최소한의 다짐을 표명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따라서 위 법에 의하면 신탁인인 거제시장은 위탁기관인 농협중앙회에 신탁재산의 관리·운용·처분에 관해 정보의 제공을 요구하거나 관여해서는 안 되고,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시장님께서 사유재산 보호 논리에 입각한 나머지 부동산과 주식을 뭉뚱그려 성급하게 답변하신 것이라고 믿지만, ‘합의를 해서 매각한다’라는 답변은 주식백지신탁 제도 취지 자체를 오해하고 계시다는 의혹을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2013년 3월 29일, 거제시민을 대표하는 김한표 의원은 현행 주식백지신탁제도가 인재의 공직 진출을 원천 봉쇄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이유로, ‘백지관리신탁계약’을 내용으로 하는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적이 있습니다.

개정안과 현행법의 차이는 기업인이 공직에 나설 때 본인 소유주식을 금융기관에 보관하고 퇴임 후 반환받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현행의 백지신탁과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개정안에 의하면 거제시장은 합법적으로 (주)진명의 주식을 농협중앙회에 임기 동안만 보관시켰다가 임기 후 주식 가치가 얼마나 상승하는지와 무관하게 반환 받을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이 발의안은 추후 폐기되었습니다.

한편 2015년 3월 5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해 충돌 방지’ 부분이 빠진 것을 입법상 후퇴로 지적했습니다.

공직자가 자신과 4촌 이내의 친족과 관련된 업무를 할 수 없도록 직무에서 배제시킨다는 ‘이행 충돌 방지’의 의미가 제게도 선뜻 구체적으로 와 닿지 않았었는데, 거제시장의 주식백지신탁 문제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덕곡일반산업단지 계획의 승인권자인 거제시장이 이 승인 업무 자체에서 배제될 수는 없으니, (주)진명의 주식만이라도 백지신탁하여 특혜 논란을 피하자는 것입니다. 즉, 주식백지신탁 제도는 「공직자윤리법」이 마련한 최소한의 이해충돌 방지 규정입니다.

적어도 국민 전체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공직으로 나아갈 때는 자신의 어떤 영리적 활동을 포기할 의사를 가진 사람만이 공직에 나가는 것이 맞고, 당연히 시민들도 이와 같은 기대를 하고 대표자를 선출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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