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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죄와 표현의 자유
명예훼손죄와 표현의 자유
  • 유태영
  • 승인 2015.06.09 23: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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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광장칼럼]유태영의 법과 사람


유태영_칼럼위원
변호사(법무법인 희망)

최근 거제시 출연 재단의 이사장이 현직 시의원의 임시회 5분 발언에 대해서 명예훼손 및 모욕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일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현항재개발 시행사는 한 지역 신문 대표를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하기도 하고, 거제시는 신동아 3월호에 실린 거제시장 관련 기사의 인터뷰 대상자가 허위 사실을 제보했다며 형사 고소하겠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례들을 보며 명예훼손죄의 역기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는 보통 허위 사실 유포만 명예훼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형법 307조 제1항은 허위 사실 적시뿐만 아니라 진실한 사실을 적시할 때도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실 적시 명예훼손죄는 선진국에서는 사문화된 규정인데, 대한민국에서는 이로 인해 처벌을 받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띕니다. 일례로 2004년 대법원은 노사협상을 앞두고 임금 체불 내용의 펼침막을 걸고 거리시위를 한 노조간부에게, 임금 체불 행위가 사실이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히며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한편 형법 제310조는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행위가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언론 기관의 사실 보도, 상가건물관리회 내에서의 총회 발언 등은 무죄로 판단되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판례에서 대법원과 하급심의 판단이 엇갈릴 정도로, 어디까지 공익으로 인정받을지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습니다. 결국 공익성 인정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기 전에 위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지적에 의해 2013년에는 진실 적시 명예훼손죄는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 제기되기도 하였습니다.

지역언론에서 명예훼손죄 고소 관련 기사가 적잖이 다뤄진 탓인지, 최근에는 어떤 행위를 하기 전에 이것이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는지 미리 물어오는 시민들도 많습니다. 주택조합 간부의 비리에 대해 조합원들에게 알리고자 하는데, 명예훼손으로 고소될까봐 꺼려진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비리 행위의 당사자로 지목된 사람은 억울함이 있다면 관련 자료를 공개하며 반박하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일단 명예훼손으로 고소 먼저 하고 보면서, 수사 절차에서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행정력을 낭비하게 됩니다. 그 사이에 우리는 진정한 공공의 이익을 위한 발언을 하기 전에 다시 한번 자기 검열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한편 모욕죄는 왕의 체면을 유지하려는 유럽의 국왕모독죄에 기반을 둔,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약화시키는 법입니다. ‘아무개가 뇌물을 받았다’와 같은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 ‘아무개는 나쁜 O, 죽일 O, 망할 O이다‘와 같은 욕설을 포함한 경멸의 표현을 한 경우에만 모욕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현직 시의원이 모욕죄에 해당하는 정제되지 못한 표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명예훼손 고소의 대상이 된 언사가 허위인지 진실인지 여부는, (그 허위 발언으로 인해 명예 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고소인들 본인만큼이나 거제시민 대다수 또한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정당한 문제 제기인지 악의적인 비방을 위한 흡집 내기인지 여부는, 형사 고소가 아닌 반론보도청구, 정정보도 청구와 같은 반론과 재반론의 기회를 통해 가려져야 합니다. 명예훼손죄 자체가 우리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형사 고소 이전에 성의 있는 반박을 먼저 준비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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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이 2015-06-11 20:16:47
표현의 자유를 너무 지나치게 외치다보면요 프랑스처럼 총격사건 벌어져요. 개인이 궁금할때는 정공개제도가 있습니다. 범죄사실이 확인되기전에는 불법이라는 단어도 적어서는 안되고요. 그사실이 궁금하면 정보공개청구하면되고요, 개인이 공표하지않는 예측적 범죄 사실판단으로 공개를하는것은 아마도 사회질서에 문제가 되지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