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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과 도박과 스크린골프장
청렴과 도박과 스크린골프장
  • 김용운 대표기자
  • 승인 2015.06.14 03: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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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청렴'이 향할 곳은 시민이 아니라 고위 공직자입니다.

얼마전 거제시 전직 건축과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놀라운 증언을 했습니다. 잘 알고 있는 술집 사장의 계좌를 빌려 자신의 돈 9천만원을 입금시켜 놓고 관리해 왔다는 겁니다.

금융실명제법 위반에다 당연히 해야 하는 공직자 재산등록도 하지 않아 공직자윤리법도 위반했습니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돈이라는 점을 시인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검찰이 그 돈이 업자로부터 받은 뇌물이 아니냐고 따지고 들자, 그가 한 대답이 놀랍기 짝이 없습니다. 처가의 재산처분과정에서 생긴 일부 현금이 포함되긴 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스크린골프장을 운영하면서 한달에 3백, 5백씩 벌어서 모은 돈이라고 한 것이지요.

재판 이전 검찰조사에서는 "도박으로 딴 돈 수천만원도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다는데, 공판과정에서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말을 바꿨습니다. 검찰 조사과정에서 담당 검사가 "고위 공직자가 도박으로 그 큰 돈을 땄다는 말을 어찌 믿느냐"고 반문하자, 그는 오히려 "내가 OO건축설계사무실에서 다른 사람들도 있는 가운데 한 것이 사실인데 왜 믿지를 못하느냐"며 항변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는 1억원 가까운 돈을 5년 이상 자기 집 장롱 속에 현금으로 갖고 있다가 지난 해에야 몇 차례에 나누어 입금했다고 밝혔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아내가 한 일이라 잘 모른다"는 말 외에는 딱 부러진 답변을 못한 것으로 보아,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그 돈의 출처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도박으로 딴 돈도 아니고, 뇌물은 더더군다나 아니라는 그의 말이 진실이라고 치더라도 시민의 허탈감과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을 겁니다. 고위 공직에 있으면서, 공무원법에서 금지한 영리 목적의 사업체를 운영한 것을 이해할 시민은 없을 테니까요.

그는 동업으로 스크린골프장을 운영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자등록증이나 그 어떤 문서에도 그가 대표였다는 흔적은 없습니다. 자신이 법정에서 이 말을 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을 일입니다. 물론 공직자신분으로 영리목적의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공무원법에 명시되어 있으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문제는 스크린골프장을 운영해서 한달에 수백만원씩 돈을 벌었다는 2009년 전후, 그가 거제시의 주택과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주택과는 건축과의 옛 부서명칭입니다.

공무원 사회의 꽃이라 불리는 5급 과장, 더욱이 다른 부서도 아니고 1년에 수천건의 건축허가를 쥐락 펴락하는 부서장이라면 그 위세는 말로 다하기 어려울 겁니다. 작년말 명퇴한 전 도시과장이 자신과 회사를 소개하는 명함에 '전 도시과장'이라고 파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말입니다.

그런 명예로운 자리에 있는 공직자의 생활비로 시민이 세금으로 주는 월급은 그렇게 부족했을까요? 얼마 안 있으면 국장으로 승진하고 서민은 꿈도 꾸기 어려운 빵빵한 연금이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보장해 줄텐데, 왜 그렇게 욕심을 부렸을까요? 그 정도 지위에 올랐으면 청렴의 의무를 명시하고 영리행위를 금지한 공무원법 정도를 모르지는 않았을 테니, 이를 실수로 돌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인·허가와 관련된 대민 업무의 최전선에 서 있는 고위공직자의 이런 도덕적 일탈에 시민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대다수 공무원들의 사기를 완전히 꺽어놓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죠.

청렴. 거제시의 거의 모든 관공서 출입문에는 이 두 글자가 눈에 띄게 붙어 있습니다. 현 시장이 2010년 당선된 이래 가장 많이 강조한 말 중의 하나도 이 '청렴'입니다. 전직 시장이 줄줄이 뇌물스캔들로 옥살이를 하는, 전국에서 흔치 않은 역사를 가진 거제다 보니 이를 강조하는 것은 결코 지나친 일이 아닙니다.

청렴, 이 두 글자는 관공서를 출입하는 시민을 향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두 글자는 문 안쪽에 붙여야 옳습니다. 청렴이 화살이 되어 날아갈 곳은 고위공직자의 책상입니다. 그 책상 서류에 녹아있는, 보이지 않는 부패의 유혹을 과녁 삼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청렴' 뒤에서 코웃음치는 이는 돈을 갖다 바치지 못해 안달이 난 시민도 아니고, 밥 한끼 얻어먹는 것이 눈치 보이는 하급 공무원도 아닌 일부 고위 공직자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공판과정에서의 증언에 따르면 전 건축과장은 한참 잘 나가는 사업을 정리한 계기가 2010년 즈음, 당선된 권민호 시장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권 시장이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정리하는게 좋겠다"고 말했다는 것이죠. 그 말은 곧 시장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것도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르긴 했지만 권 시장은 부적절한 처신을 한 그를 지난해 연말 4급 서기관으로 승진시켰습니다. 공무원사회에서 임명권자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은 승진과 보직 부여입니다.

그의 과거 전력을 알고 있는 임명권자가 그렇게 승진시킨 것이 나머지 공무원들에게 어떤 시그널을 주는 것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법정 증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지만 과연 그동안 공무원사회에서는 이 일이 절대비밀로 유지되어 왔을까요? 이 일을 알고 있는 공무원들은 그 승진을 어떻게 바라 봤을까요?

권 시장의 '청렴'의지가 빛을 발하려면 스티커붙이고, 피켓들고, 전단지 돌린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시장 주위에 있는 고위공직자부터 철저한 자기 규율을 갖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에 불과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작은 것에서부터 청렴 위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도록 강력한 통제수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사권자의 권한을 이용해 실천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것이 시민이 위임한 권한을 올바로 행사하는 것입니다.

시장 힘만으로 부치면 시민이 힘을 보태면 될 일입니다. 이참에 시에 있는 그 많은 위원회에다 '부패방지위원회' 아니면 '청렴위원회' 같은, 정말 필요한 위원회 하나 더해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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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픈이 2015-06-17 09:01:54
아!레알명쾌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