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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는 바다와 노을까지도 팔수 있어야"
"거제는 바다와 노을까지도 팔수 있어야"
  • 김용운 대표기자
  • 승인 2014.12.03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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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운의 직격인터뷰] 김호일 거제문화예술회관 관장

50개월 몸담았던 거제문화예술회관을 뒤로하고 12월 8일부터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의 사무총장으로 내정된 김호일 관장. 거제에서 생활은 어땠는지, 아쉬운 것은 없는지, 시민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그간의 소회와 하고 싶은 말을 듣고 싶었다. 아쉬움과 미안함, 기대가 묻어나는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31일 본사 회의실에서 이루어졌다.

-‘문화의 바다여 파도처럼 일어나라’라는 책을 냈다. 공직에 있다가 그만두는 사람으로서 흔치 않는 일인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알다시피 거제는 태어나거나 자란 곳도 아니어서 학연이나 지연 같은 것이 없다. 열심히 일한다고는 했지만 문화예술회관의 활동이 잘 전달되지 않은 것도 많다. 특히 공중파방송이 없다보니 홍보에 많은 어려움도 있었다. 26만 시민들 중에는 아직도 문화예술회관이 있는지, 어디에 있고, 어떤 일을 하는 지 모르는 분들도 많다. 시민들과 소통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책의 부제도 ‘김호일의 못다한 이야기’다.

- 책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대략 7개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거제를 오게 된 사연, 거제와의 인연이랄까 그런게 먼저고, 무슨 일을 하려 했는가, 무슨 일을 그동안에 했는가, 어떤일을 하지 못했는가, 거제에서 느낀 생각, 거제가 필요로 하는 일들, 이 변화의 시대에 거제가 과연 현재와 같은 산업도시의 특성만으로 지속성장이 가능한가, 문화관광도시로의 전환이 필요하지는 않는가, 그럴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문화가 발달한 도시는 어떤 곳들이 있는가, 세계적인 선진사례는 어떤 것이 있나 등 그런 얘기들을 적었다.

- 예전에 페이스북에서 어머님께서 아버님생각하며 포로수용소 다녀가셨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포로수용소와 어떤 인연이 있나?
사실 아버지가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해서 거제포로수용소에 있었다. 인연이라면 그것도 큰 인연일 것이다. 난 어려서부터 그 당시 포로수용소의 사정을 부모님으로부터 듣고 자랐다. 지금 포로수용소는 하나의 테마파크처럼 되어 있지만 막상 지역과 한국의 어린 청소년들이나 젊은이들은 당시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이야기, 기록들도 책에 포함되어 있다.

-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으로 가게 되는데 그 쪽으로 가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특별한 동기가 있었던 아니다. 거제와 마찬가지로 아무 연고도 없다. 청주를 놓고 생각한 것은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과 열망 때문이다. 거제는 4면이 바다인 곳인데 반해 청주는 바다가 없는 곳이다. 바다를 경험해 보지 못한 도시, 그곳에서의 문화산업은 어떠해야 할 지에 대해 관심이 높았다.

- 재단 사무총장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나?
거제문화예술회관와 50%정도는 비슷한 업무이고 나머지 50%정도는 새로운 영역이다. 재단은 4개의 부서로 이루어져 있다. 문화산업부, 문화예술부, 비엔날레부, 경영지원부 해서 약60명의 직원이 있는데, 이들과 함께 일하게 된다. 지금 청주시는 산업도시, 교육도시의 도시 이미지에서 문화중심도시로 전환하려는 기로에 있다. 청주시의 숙제 중의 하나가 1940년대에 지어진 70년 역사를 가진 연초제조창의 활용에 관한 것이다. 당시는 이곳이 거제의 조선소처럼 충청도 사람들의 산업중심지였다. 지금은 그곳에서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를 연다. 연간 40일간 개최되는 이 비엔날레는 작년에만도 약40개국에서 참가했고 관람객도 50만 명을 넘는다. 두 번째는 금속활자인 ‘직지’(직지심체요절)문화를 알리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서양의 쿠텐베르그 금속활자보다 78년 앞선 세계적인 문화유산이고 유네스코에도 등재되어 있다. 이것이 청주가 우리나라 공예문화의 선두주자가 되려는 시도를 하는 이유이다. 다음이 초정약수에 관한 것이다. 청주에 있는 ‘초정’은 세종대왕이 피부병치료로 찾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와 관련된 스토리를 관광자원화하는 것도 과제다. 또한 청주에는 청주공항이 있다. 이곳을 통해 아시아 관광도시로 역할을 증대시키려는 시의 기대도 크다.

- 첫 임기 3년 후 작년 9월에 연임됐다. 임기가 아직 남아 있는데 옮기는 것에 대해 시민들의 의구심도 많다.
아직 임기가 22개월 남아있다. 이런 시점에서 옮기는 것에 대해 시민에게 죄송하다. 중요한 공직을 다 채우지 못한 것에 대해 변명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런 점도 이해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첫3년 임기는 사실 제 발로 와서 일한 시간이다. 정말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다. 작년 이사회에서 연임을 결정할 즈음에 연임을 요청한다면 1년만 기간을 더 달라고 했다. 규정상 쉽지 않은 일이라 3년의 기간이 더 주어졌다. 두번째 3년 기간 동안은 나의 자유의지도 어느 정도 개입할 수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 자유의지라 함은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뜻인가?
비슷하다. 무엇보다 관장으로 50개월 지나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자 하는 정열이 식어가는 걸 느꼈다. 나 스스로 집중력이 떨어져가고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우리 거제시민들에게도, 문화예술 종사자들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자리만 차고 앉아 있는 것 밖에 더 되겠나? 환경을 바꾸어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고 마침 청주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접해서 응모했다. 다행히 7명의 심사의원들이 최고점을 준 까닭에 옮기게 된 거다.

- 원래 그렇게 새로운 일을 찾아 즐기는 스타일인가?
천성이 그런 것도 있겠지만 거제라는 곳이 발 닿는 곳마다 새로운 영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일례로 폐교가 된 여차초등학교엘 간 적이 있다. 나는 여기서 장승포 출신인 정영만 선생을 떠올렸다. 그는 통영에서 활동하는 분인데 남해안별신굿 문화재보유자다. 이 분께 이 폐교를 작품활동의 장소로 제공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사석에서 넌지시 여쭤본 적이 있다. 아주 반가워하셨다. 자연을 자연으로만 보지 말고 어떻게 하면 문화, 예술과 접목시킬까 그런 생각들이 참 많았다.

- 관장으로 재임하는 기간 동안 거제문화예술회관이 질적, 양적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들이 있다. 4년간 돌아봤을 때 가장 역점을 둔 분야는 무엇인가?
그런 평가는 큰 영광이다. 처음 거제 왔을 때 느낌은 울산과 마찬가지로 잘사는 도시라는 느낌이었다. 지디피(GDP)가 4만불이 넘는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고 실제 그렇게 보였다. 그런데 아쉬웠던 게 그만한 높은 소득에 비해 문화행정정책은 부족해 보였다. 문화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감동요소라는게 있다. 그걸 느끼려면 일단은 문화예술을 접해봐야 한다. 특히 거제시에 사는 26만 시민들 중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비율이 약 70%가 넘는데 이들이 예술회관을 올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했고 거기에 집중했다. 느끼는 것은 그 다음 문제였으니까.

- 결과가 어땠나?
미안하지만 자랑할 만한 수치가 하나 있다. 작년 경남의 18개 예술회관 중에서 거제문화예술회관이 공연일수가 가장 많았다. 연간 231일이었다. 이건 우리가 임의로 만든 게 아니라 한국문화관광부와 경남발전연구원에서 집계한 데이터다.

-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로 보이는데, 포상을 받은 건 없나?
안타깝지만 없다. 내가 관장으로서 상 받는 그런 것은 원치 않는다. 다만 수고하고 그만한 성과를 낸 직원들에게는 최소한의 포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아마 상신도 하지 않는 모양이다. 아쉬운 대목이다.

- 객관적인 데이터 말고 시민들이 ‘예술회관이 심리적으로 가까워졌다’ ‘친근해졌다’ 이런 말들이 많다. 느낌이 어떤가?
고마운 일이다. 아마 그렇게 큰 부담을 갖지 않고도 대도시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을 접할 수 있고,시민들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대관을 하기도 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공연장은 와서 느끼는 것이고 문화예술 소비는 충동구매가 아니라 계획구매다. 그런 특성 때문에 공연, 전시물의 대상을 잘 선택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꼭 필요한 공연이긴 한데, 서울 경기의 2~30만원의 공연관람료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격을 대폭 낮춘 경우도 있다. 이럴 땐 이윤을 생각하면 안 된다. 일부러 적자를 내서는 안되지만 공연예술은 기본적으로 적자를 안고 간다. 물론 지난 번 ‘인순이’ 공연처럼 130% 이익을 남기는 것도 있다.

- 재임기간 중 기억에 남는 공연이나 행사가 있었다면 무엇을 꼽겠나?
공연 중 가장 관심이 큰 것은 아무래도 매년 연초에 있는 신년음악회다. 2011년 신년음악회 때 모스코바 국립오케스트라 초청공연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78명 단원으로 이루어진 이 오케스트라가 대극장에서 첫 음을 낼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내년 신년음악회에는 비엔나왈츠오케스트라를 초청했다. 시민들에게 좋은 음악감상의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한다. 크고 유명한 공연만 중요한 게 아니다. 그간 청소년을 위한 좋은 공연, 지역 향토문화를 전승하는 공연 같은 것은 ‘돈 안되는 것’이긴 하지만 꼭 해야 하는 것이었고 끊임없이 이를 찾아내려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시민들의 호응이 높았던 인순이나 장사익 같은 대중적 공연도 의미가 있었다.

- 곧 후임을 뽑을 텐데, 어떤 사람이 오면 좋겠나?
남은 기간 근무하는 게 아니라 새롭게 3년 임기를 맡을 후임을 공모할 것이다. 거제에 대한 애정이 있고 지역예술인과 소통하려는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전문성도 중요하다. 관광과 예술을 접목시킬 수 있는 안목이 있으면 좋겠다. 국제적 감각을 소유하고 거제를 문화의 도시로 지속발전 시킬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거제예술회관은 단순히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흉내를 내서는 안된다. 지역사회에 소득계층도 대단히 양분화되어 있다. 서울 등 대도시에 일부러 공연을 보러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단돈 1만원의 관람료도 없어서 못 오는 시민들도 많다. 이 점을 잘 살펴서 공연을 정하고 섭외해야 한다. 다만 행정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만 뽑을 것이 아니라면 타지에서 오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은 해줘야 한다. 이를테면 관사나 주거비 정도는 지원해주면 좋겠다.

- 앞으로 예술회관이 해야 할 일 중에 꼭 이루어 졌으면 싶은 게 있나?
올해 10월 업무보고 때 3가지를 요청했다. 첫째는 1천명 이상의 우리 시 공무원들이 1년에 한번 이상은 공연관람을 의무화 해달라는 것이었다. 공무원이 솔선하는 문화마인드 없이 시 행정이 문화예술도시를 주창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두번째가 청마기념관을 예술재단으로 이관해서 운영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해양관광개발공사가 맡아서 운영하고 있는데 학예업무와 연구 마케팅 업무가 부족하다. 청마기념관, 청마생가는 문학에다 예술을 접목시켜야 그 상상력이 극대화되고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세번째가 송진포예술창작촌이다. 예술인들이 창작에 전념토록 시에서 지원하는 것인데 현재는 시청 문화공보과에서 관리한다. 그러면 이것도 시설보수나 유지와 같은 하드웨어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곳에 상주하는 예술인들과 소통하고 이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전담기구인 예술재단이 맡아서 학예사들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 거제와의 인연이 끝난 게 아니라는 뉘앙스의 글을 남겼다. 다시 올 계획인가?
내가 해외에서나 국내에서나 배운 것은 해양관광분야의 도시발전 전략이다. 담양의 소쇄원은 작은 터에 불과하지만 거기에는 대단한 역사적, 인문학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렇게 놓고 볼때 나는 우리 거제시가 대한민국에서 해양관광분야의 ‘시크릿 가든’(비밀의 정원) 같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꾼다. 고단한 국민들이 ‘힐링하려면 거제로 가자’라는 말이 나오면 얼마나 좋겠나. 뉴욕이 세계에서 가장 빈부격차가 심한 곳이지만 그래도 시민들이 통합되는 것은 센트럴파크가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스스로 치유하고 소통한다. 우리 거제가 대한민국의 센트럴파크가 되었으면 좋겠다. 미처 그런 꿈을 펼치지는 못했다. 기회가 온다면 거제에서 그러한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필요하다면 더 공부하고 대비하겠다.

- 15일 책 사인회를 잡았던데?
15일 시청 문화공간 ‘도란도란’에서 졸필이지만 사인회를 한다. 내가 계획한 건 아니고 책을 팔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거제예총에서 지역문화인들이 조그마한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고맙게 받아서 진행하려 한다.

- 거제는 앞으로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잘사는 도시여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살고 싶은 도시여야 한다. 돈만 많이 번다고 살고 싶은 도시가 아니다. 우리 거제에서만 볼 수 있는 것, 인문학적 바탕으로 가치있는 것, 이것을 키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최소한 조선산업과 더불어 관광산업을 미래의 먹거리로 생각한다면 거제의 정체성을 극대화하는 관광전략을 짜야 한다. 거제는 바람과 노을과 바다를 감성기회로 팔아야 한다. 다른 곳에서 오는 관광객이 대규모 쇼핑몰, 놀이공원 즐기러 오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자연이라는 요소와 작더라도 문화적 감수성이 있는 것을 찾아내고 거기에 예술적 상상력을 덧붙여야 한다. 이것이 거제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 우리 신문이 창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떠나게 되어 좋은 글이나 말을 듣지 못해 아쉽다. 거제밖에서 보는 거제의 모습을 자주 전해주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임기 끝내지 못하고 떠나서 죄송하다. 하지만 거제에 대한 애정은 여전할 것이다.거제는 삶에 지친 나에게 물질주의를 떠나서 감성을 회복시키고 마음을 정화시키고 영감을 주고 재충전의 기회를 주었다. 어찌 이 생활을 잊겠나? 기회가 닿고 능력이 되는데 까지 거제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겠다.

그는 내내 얼굴이 밝지 않았다. 말마다 임기를 남겨두고 떠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거제토박이’ 보다도 더 토박이 같은 애정과 높은 식견을 보여주었다. 1시간 남짓 휴대폰은 계속 울려댔다. 아마도 여기저기서 이별의 정을 나누자는 얘기일 것이다. 바쁜 시간 짬내어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해준 데 대해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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