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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 해결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탤 것"
"비정규직 문제 해결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탤 것"
  • 노재하 기자
  • 승인 2015.09.23 2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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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인터뷰] '불구속 조사' 통보 받은 강병재 의장

대우조선해양의 60m 크레인에서 165일간 고공농성을 벌여온 강병재(52) 대우조선하청노동자조직위원회 의장이 불구속 상태에서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거제경찰서는 21일 강 의장을 경찰서에 불러 조사한 데 이어 22일 강 의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찰, 22일 '불구속 상태로 조사' 통보

앞서 지난 20일 강 의장이 크레인에서 내려오자마자 경찰은 업무방해 및 건조물 침입 혐의로 체포영장을 집행한 가운데 강 의장은 백병원으로 후송돼 건강검진을 받았다. 당시 경찰은 병원 측의 건강검진 결과를 지켜 본 후 구속 여부 등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었다.

이날 병원 측은 “강 의장이 간 수치 저하와 탈진 상태로 입원이 필요하다”는 1차 소견에 이어 21일 “두통, 상복부 통증 등 복합적 증상으로 1주일간 입원하여 항생제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서를 내 놓았다.

구속영장 시한(체포후 48시간 이내)을 불과 30분 앞둔 22일 오후 3시경 경찰은 강 의장에게 “검찰에서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기로 했다”고 통고했다.

거제경찰서 수사 담당자는 22일 <거제뉴스광장>과의 통화에서 “165일간의 농성으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로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병원 측의 소견서와 피의자가 성실히 조사를 받겠다고 약속한 점 등을 검찰에서 고려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불구속 상태에서 추석 지나고 보강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 의장은 경찰로부터 불구속 결정을 정식으로 통보받고 <거제뉴스광장>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병실을 나선 강 의장을 병원 뜰에서 만났다. 강 의장은 밝은 표정과는 달리 크레인에서 내려오던 그 때와 같이 덥수룩한 수염에 초췌한 모습 그대로였다. 작업복 대신 환자복을 걸쳤을 뿐, 기자의 질문에 거침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아래는 강병재 의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동료노동자, 시민단체, 을지로위원회, 대우노조, 회사 경영진, 협력사협의회 등에게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지난 2011년 88일 송전탑 농성에 이어 이번 크레인 농성은 두 배로 길었다. 봄을 지나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건강은 어떤가?

아직 어지럽고, 머리가 무겁다. 병원에서 검진 결과 장기 고공농성 탓에 상복부 통증 등 복합적 증상이 나타나 금식을 하며 항쟁제 치료를 받고 있다. 크레인 위에서의 긴장이 채 가시지 않아 잠은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하루가 다르게 점차 몸을 회복하고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어렵게만 여겨졌던 협상이 마무리돼 땅을 밟게 됐다. 노사 양측만이 아니라 정치권과 시민단체, 시민들까지 모두 원만히 풀리기를 기대했다. 참 다행스럽다는 반응이다.

크레인으로 올라갈 때부터 오늘까지 한결같이 함께 한 동료 노동자들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지역대책위 분들 덕택에 내려올 수 있었다. 대책위 동지들에 대한 고마움은 늘 가슴 속에 새겨두고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이외에도 을지로위원회 이원정 총괄팀장이 2박3일 동안 헌신적인 중재 노력을 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경남지부, 전국에서 모여든 9.12희망버스, 정치권의 관심과 지원 등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어렵게만 여겨졌던 ‘복지확약서 약속 이행’이라는 요구를 가능케 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올초부터 각종 악재가 겹쳐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많았던 것으로 안다. 

사실 노조와 회사의 적극적인 노력이 없었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대우조선 노동조합이 책임감을 갖고 끈질기게 노력한 덕분에 실질적인 교섭을 진행할 수 있었다. 특히 현시한 위원장, 양병효 고용안정부장의 진심어린 연대와 도움에 감사드린다. 어려운 회사 사정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려준 대우조선해양 경영진과 협력사협의회, 소망ENG 대표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무엇보다 고3 딸에 대한 걱정이 많았을텐데.

딸아이에게는 아비로서 미안함 마음뿐이다. (애써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치며 얘기를 이어갔다) 아빠를 많이 원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빠 힘내’라며 문자도 보내줬다. 그나마 아빠 입장을 이해 해주고 묵묵히 견뎌준 아이다. 이제부터라도 아빠 노릇 제대로 하려 한다. 수능시험을 마치는 대로 함께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협상이 추석 전에 마무리돼 천망 다행이다. 내가 큰아들이라 설과 추석은 대개 우리집에서 모여 제사도 지낸다. 그래서 어머님께는 걱정하실까봐 알리지 못하게 했다. 연로하신 어머님과 함께 무탈하게 추석을 보내게 됐다. 이번 추석에는 누님과 동생과 같이 집에서 보낼 계획이다.

"혼자 내려와 미안하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탤 것"

농성을 해제하면서 약속 이행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나?

4년 전 88일간의 송전탑에서 내려올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약속 이행에 대한 나름의 신뢰할 만한 조건이 마련됐다.

신뢰할 만한 조건이란 무엇인가?

먼저 원직복직 회사가 정해지고 그 회사 대표가 합의서에 서명했다. 현재 자세하게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논란을 없애기 위해 복직 시기, 임금관계 등은 별도의 합의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또한 김기식 국회의원과 을지로위원회가 입회인으로 참여해 합의서 파기는 걱정하지 않는다.

9.12 희망버스는 서울에서 출발해 거제를 거쳐 부산을 향하는 1박2일 일정으로 진행됐다. 아직 부산과 서울에서는 고공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인 최정명, 한규협씨가 국가인권위 광고탑 위에 있다. 부산 생탁 노동자 송복남씨와 부산 한남택시 노동자 심정보씨도 부산시청 전광판에서 고공농성을 각 114일, 160일째 이어가고 있다.

혼자 먼저 내려온 꼴이 돼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다.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 노동조합 활동 보장 등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지키라는 지극히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것이다. 결국 비슷한 처지에서 느끼는 아픔이다.

60m 높이의 크레인에서 많이 외롭고 무서웠다. 힘들었고, 울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들과 카톡방을 개설해 고공농성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민이나 어려움에 대해 진솔하게 얘기도 나눴다. 이들은 동지 그 이상의 마음이다. 몸을 추스르는 대로 고공농성 현장에 다녀올 계획이다.

경찰 조사 등 법적문제에 대한 대응 계획은?

오늘(22일) 거제경찰서 담당자로부터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가 진행될 예정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기본적으로 ‘원직본직 합의서를 지키라’는 당연한 것을 요구하기 위해 크레인에 올라갔고, 또 다시 그 약속을 받고 스스로 내려왔다. 그렇기 때문에 조사를 회피하거나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경찰과 검찰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것이다

병원 치료가 우선이고, 당분간 안정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계획은?

당분간 병원에 있는 동안 아픈 몸부터 추슬러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볼 계획이다. 두 차례 고공농성에 나서면서 크레인 위에 있으면서 살아 내려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단지 개인적 이익을 위해 원직복직 만을 바라보고 크레인에 오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선 원직복직을 하고 내가 담당해야할 전기 관련 현장업무를 제대로 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할 생각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단지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이웃과 우리 아이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더 이상 거제에서 힘없는 사내하청 노동자가 하늘길에 오르는 일이 없도록 ‘우리’, 그리고 ‘내 자식’의 문제로 바라봐 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를 위해 나에게 작은 힘이라도 남아있다면 기꺼이 보탤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문제 처우개선을 위해 행정이나 의회에 바람이 있다면.

얼마 전 거제비정규직 지원센터가 의회에서 통과된 걸로 알고 있다. 거제에서 조선업종에서 일하는 물량팀, 사내하청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거의 6~7만에 육박한다. 이들이 마음 놓고 찾아 와서 눈치 보지 않고 어려움과 고민도 토로하며, 쉴 수 있는 사랑방이 절실하다. 그 곳이 바로 비정규직 지원센터여야 한다. 비정규직노동자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설움을 함께 아파하며 희망을 그려갈 수 있는 비정규직 지원센터를 마련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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