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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서 민주주의로, 엄마에서 '투사'로···희망을 쏘다
'밥'에서 민주주의로, 엄마에서 '투사'로···희망을 쏘다
  • 김용운 대표기자
  • 승인 2015.12.30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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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거제무상급식운동 1년, 무엇을 남겼나(1)

2015년, 한 해 동안 거제를 가장 뜨겁게 달군 이슈는 단연 '무상급식'이다. 홍준표 도지사의 무상급식 폐지에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평등밥상'으로 맞섰다.

1년동안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비, 서민자녀교육지원조례, 도의회 연찬회, 학부모 고소고발, 무상급식 의무화 조례 개정과 주민청원, 7차에 이르는 시청앞 대규모 집회, 매일 학교앞 시위와 거리집회를 거쳐 결국 도지사 소환운동으로 일단락됐다. 

'순진한 엄마'들이 도지사와 맞장뜨고 '민주주의 수호자'로 나서기까지 무상급식 운동의 의미를 2편의 기사(⓵밥에서 민주주의로, 엄마에서 '투사'로···무상급식 1년 어떻게 흘러왔나 ⓶[인터뷰]주민소환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무상급식 운동의 출발점이 된 2014년 11월 10일 기자회견. 학부모들은 도지사의 부당한 권위에 맞서기 시작했다.

2014년 11월 10일 20여명의 학부모들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거제시청 브리핑룸에 모습을 나타냈다. '아이들의 밥상을 걷어찬 홍준표 도지사에게 엄중히 경고한다'라는 성명서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은 거제시 무상급식 운동의 출발점이 됐다. 경남도내 15개 시군에서 동시에 열린 기자회견이었다.

다음날인 11월 11일 경남도내 시장 군수들은 경남도청에 모여 '정책회의'를 열고 홍 지사와 뜻을 같이했다. 학부모들의 요구를 '걷어차고' 2014년까지 배정된 무상급식 예산을 전액 없애기로 한 것이다. 거제시도 예산 30억원을 없애고 예비비로 돌렸다. 11월 남은 기간, 학부모들은 거제시장을 만나 무상급식 예산을 돌려놓으라고 요구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2월 8일 경남도의회는 도교육청이 신청한 무상급식 예산 257억원을 전액 삭감해 홍 지사를 쫓았다. 12월 11일 학부모 50여명은 48개 학교와 교육, 거제시청 앞에서 1인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거제시의회는 12월 23일 경남도의 방침에 따라 무상급식예산을 '서민자녀교육사업비'로 바꾼 2015년도 당초예산을 통과시켰다.

해를 넘겨 2015년, 결국 학부모들은 손팻말과 펼침막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1월 9일 홍 지사의 거제순방에 맞춰 시의원과 함께 항의 팻말을 들었다. 막아서는 공무원들과 한바탕 설전을 벌여가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3월 시의회에서 시정질문을 통해 권민호 시장을 압박했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3월 중순 각 학교는 '밥값을 내라'는 통지문을 학부모에게 발송하기 시작했다. 4월부터 무상급식 폐지가 현실화된 것이다.

3월 19일, 경남도의회는 무상급식예산을 빼돌려 사용하기 위해 '서민자녀교육지원조례'를 통과시켰다. 55명의 도의원 중 44명이 찬성했다(반대7, 기권4). 학부모들의 반발이 극에 달했다. 도의회 앞에 모인 1000여명의 시민을 맞이한 건 20여대의 경찰차벽이었다. 곧 경남도내 18개 시군으로 싸움터를 옮겨 '(시군)서민자녀교육지원조례' 전투가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3월 31일, 거제시청 '도란도란'에 모인 10여명의 학부모들. "뭐라도 해 보자'는 마음으로 번개모임에서 만난 이들은 거제 무상급식운동의 주축이 됐다.

31일 '앵그리맘' 10여명이 거제시청 도란도란에 모여 '무상급식지키기 거제학부모모임' 번개모임을 열었다. 대개가 낯선 엄마들이었다. 대화는 '도란도란'했지만, SNS밴드를 만들고 학부모들을 규합하고 나섰다. 불과 3일만에 1천명에 육박하는 학부모가 밴드에 자발적으로 가입했다. 한 달만에 그 수는 3천명 가까이 늘어났다. 시민단체가 끌어오던 '무상급식' 운동이 일반 학부모가 대거 참여하는 대중운동으로 확산되는 분수령이 된 시점이다.

4월, 거제 학부모들은 가장 바쁘게 가장 강렬하게 무상급식 운동을 펼쳤다.

4월 3일 아직 쌀쌀한 고현사거리에서 시작된 집회에는 고작 20여명의 학부모가 참가했다. 하지만 4월부터 무상급식이 중단되고 통장에서 급식비가 빠져나가면서 학부모들의 결의도 강해졌다. 학교별 대책위를 꾸리거나 학부모회가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6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거제시청 앞에서 학부모들의 첫 '무상급식' 집회가 열렸다. 참여인원은 70여명. 1주일 전보다 좀 늘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10일, 거제시청이 생긴 이래 최대 인파라 할 만한 집회인원이 모여들었다. 학부모 700여명이 모였다. 식판과 고무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른 학부모들은 "엄마들이 힘 합치면 홍준표 이길 수 있다"고 외쳤다. '내 아이의 밥그릇'이 아닌 '우리 아이들의 평등밥상'을 공공연히 주장했다. 더이상 집안에 머무르는 '엄마'가 아니라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선언이었다. 

일명 '시청 대첩'이라 불린 4월 10일 집회. 거제시청 개청 후 최다 집회 인파를 기록했다.

이때부터 학부모와 시·시의회간 '서민자녀교육지원조례' 제정을 둘러싼 긴 싸움이 시작됐다.

학부모 대표단은 시의회 의장단을 면담하고 '서민자녀교육지원조례'를 상정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결국 15일 개회된 175회 거제시의회는 '서민자녀교육지원조례'상정을 포기했다. 하지만 실적이 필요했던 거제시는 본청 직원까지 면동사무소로 내려보내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에 신청하라며 '서민'을 독려하고 나섰다.

여세를 몰아간 학부모들은 24일 공공청사 대회의실에 모여 '무상급식 원상회복을 위한 거제시민본부'를 결성했다. 각 학교 대표자들만 모인 자리인데도 그 수가 100명을 넘었다. 40여명의 공동대표단, 6명의 상임대표단이 구성됐다. 이들은 21일 도의회가 중재안이라고 내놓은 선별급식안을 거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28일 학부모들은 다시 거제시청 브리핑룸에 모습을 드러냈다. 브리핑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인 150여명이 자리를 함께해 거제시민본부 결성 기자회견을 가졌다. 서민자녀교육지원조례 폐기와 무상급식 예산배정을 촉구했다.  

같은 날, 박종훈 교육감이 거제를 방문했다. 시민본부 학부모들을 만난 뒤, 권민호 시장과 반대식 시의회 의장을 찾았다. 박 교육감은 "무상급식은 돈 문제가 아니라 원칙과 보편적복지 문제"라고 말했고, 권 시장은 "교육청 방안이 마련되면 18개 시군 단체장 모임에서 절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학부모들은 박 교육감에게 도의회 중재안을 거부하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4월 중순부터 각 학교앞에는 적게는 너댓명에서 많게는 1백여명에 이르는 학부모들이 손팻말을 들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았다. 학교별 대책위나 학부모회가 주도한 집회가 매일 이어졌다. 시민본부는 학교별 집회신고서를 경찰서에 접수시키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4월 24일, 학교별 대표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무상급식 원상회복을 위한 거제시민본부'를 결성했다.
4월 30일, 학부모 대표단은 권민호 시장과 첫 간담회를 가졌다. 서민자녀교육지원조례 폐지와 무상급식 예산편성을 촉구했다.

30일, 시민본부 대표자들은 권 시장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권 시장은 "무상급식 후폭풍이 이렇게 큰 지 몰랐다"라고 적잖이 당황했음을 시사했다. 권 시장은 또한 서민자녀조례와 관련해 "시에서 상정해도 의회에서 통과 안된다" "서민자녀 예산 없다. 도에서 하라 해도 예산 없어서 사업 못한다"라고 발언했다.

이 무렵 박명옥, 한기수, 최양희, 송미량, 김성갑 시의원은 물론 새누리당 전기풍 시의원까지 시의회 본회의에서 5분 자유발언과 시정질문을 통해 무상급식을 촉구하며 학부모들과 발을 맞췄다. 한기수, 송미량 의원은 무상급식이 원상회복될 때까지 회기중 의회에서 제공하는 '공짜밥'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5월 5일 어린이날, 대우조선노동조합과 삼성중공업이 각각 어린이날 기념행사를 열었다. 하지만 가장 각광받은 행사는 시민본부가 주최한 어린이날 행사 '잘 먹고 잘 놀아야 잘 큰다'였다. 거제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 열린 이날 행사에는 2천여명의 학부모와 어린이가 운집했다. JTBC 카메라가 이날 행사를 취재해 저녁방송에 내보냈다. 행사를 마친 학부모들은 펼침막을 들고 시청앞까지 거리행진을 이어갔다. 세 번째 시청앞 집회가 이어졌다.

어린이날, 학부모와 자녀 등 2천여명이 참가한 행사가 거제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렸다.

7일, 박종훈 교육감은 도의회가 내놓은 중재안에 대해 '수용불가' 입장을 밝혔다. 경남도내 대다수 무상급식 시군별 본부가 요구한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박 교육감은 대신에 '교육청50% + 지자체(시군+도)50%' 분담으로 2014년 수준의 무상급식을 하자고 수정제안했다. 교육청에서 161억원을 추가로 부담하겠다는 뜻이었다.

박 교육감의 수정제안에 대해 도의회가 발끈했다. 도의회는 11일 "더 이상의 중재는 없다" "앞으로 모든 책임은 박 교육감에게 있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교육청의 무상급식예산을 삭감할 것이라고 홍 지사를 엄호하고 나섰다. 학부모들은 '홍지사 거수기에 불과한 도의회가 무슨 낯짝으로 중재안이냐'며 몰아부쳤다. 이때부터 학부모들은 도의원(도의회)와 전면전을 치를 각오를 다졌다. 

13일 학부모 500여명은 거제시청 앞에서 네 번째 집회를 가졌다. 도의회 중재안을 둘러싸고 일었던 도의원에 대한 비판이 수위를 높여갔다. "중재안 폐기" "응답하라 도의원 000"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날도 학부모들은 서민자녀교육지원조례 폐지와 급식비지원 의무화 조례 개정을 요구했다. 집회가 끝난 후 학부모들은 시장을 만나 어린이날 쓴 무상급식 엽서를 전달하여 했으나 만나지 못했다. 이날 집회를 시작으로 1주일에 한 번 시청앞 집회는 한 달간 계속됐다.

19일부터 시작된 176회 거제시의회(임시회)에 말많은 '서민자녀교육지원조례'가 상정됐다.

학부모 500여명은 즉각 거리행진으로 맞섰다. 거제실내체육관에서 출발해 고현 시내를 거쳐 거제시청까지 가는 2.5km 거리행진으로 직접 시민들을 만나 무상급식 원상회복과 서민자녀 조례 폐지를 알렸다. 시청앞 5차 집회였다. 결국 반대식 의장은 직권으로 이 안건을 상임위원회에 회부하지 않기로 하면서 급한 불을 껐다. 이때부터 이 조례는 시의회에 보류됐다. 

서민자녀교육지원조례 의회 상정에 학부모들은 거리행진으로 맞섰다.

매일 학교앞 집회에 이어 27일 6차, 6월 3일 7차 시청앞 집회를 이어갔지만 학부모들은 지친 기색을 별로 나타내지 않았다. 7차 집회에서 학부모들은 "가장 강한 힘은 정치권력 아닌 엄마들의 힘"이라고 외치며 서로를 격려했다.

이 무렵 4월 한 달 동안 거제시에서 급식비를 내지 못한 학생이 2416명, 미납액은 1억3600만원이라는 <거제뉴스광장>의 보도가 나왔다. 동부초에서는 아예 학교운동장 한편에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부모가 직접 학생들에게 배식을 하기 시작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6월초 거제시는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비로 잡았던 당초예산 33억4000만원중 도비 15억7500만원을 시 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립전 예산'으로 집행했고, 나머지 17억여원은 177회 시의회(정례회)에 추경예산으로 편성해 상정했다. 학부모들은 서민자녀교육지원조례 제정도 안된 상태에서 유사한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했다. 33억원을 무상급식 예산으로 편성하라는 요구도 계속됐다.

6월 20일, 김한표 국회의원이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것을 두고 김 의원과 학부모간의 SNS논쟁이 시민의 관심을 끌었다. 개정안 요지는 도지사가 교육감을 임명한다는 교육감 직선제 폐지안이었다. 학부모들은 '김 의원이 경남이 도지사와 교육감이 정치적으로 같은 정당 성향이 아니라서 무상급식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 급식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6월 23일, 친환경무상급식지키기 경남운동본부는 18개 시군별 운동본부 대표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시 학부모총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홍준표 도지사 주민소환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홍 지사가 있는 한 어떤 방법으로도 무상급식을 되돌리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각 지역에서는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도민 유권자 10%이상의 서명을 받아 소환투표가 가능할 지에 대한 확신은 그리 크지 않았다.

177회 시의회(정례회)가 끝나고 학부모들은 한숨 속에 조화를 시의회 앞에다 갖다바쳤다.

7월 3일 끝난 177회 시의회는 무상급식과 관련해 학부모들을 더욱 분노케했다. 2가지 안건이 학부모들의 요구과는 정반대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이 요구한 무상급식 의무화 청원과 조례개정은 부결됐다. 1만명이 넘는 학부모와 시민이 서명에 참여했던 청원이었다. 오히려 시의회는 시가 제출한 17억여원의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 추경예산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총무사회위원회에서 6월 29일 전액 삭감한 예산을 30일 예산결산위원회에서 다시 부활시킨 것을 두고 '정당 거수기'라는 오명이 붙어다녔다. 본회의에서 두 번의 부결 끝에 궁여지책으로 세 번째 급조된 수정안을 만들어 겨우 통과했다.

시민본부는 예결위의 예산 부활을 규탄하는 성명을 7월 1일 발표해 "시민을 기만하고 배신했다"고 질타했다.  7월 3일 본회의가 끝나자 학부모들은 '근조 거제시의회' 팻말과 조화를 시의회 청사 정문앞에 놓는 것으로 배신감을 나타냈다. '민의의 전당'이 '민의의 배신자'로 낙인찍히게 된 시점이다.

7월 8일, 무상급식과 관련해 가장 큰 사건이 발생했다. 경남도의회가 1박2일로 도의원 연찬회를 한다며 대명리조트거제를 찾았고, 학부모 100여명은 리조트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흥분한 일부 학부모가 고무신 1짝과 날계란 2개, 소금을 도의원들이 타고 있던 버스를 향해 던졌다. 도의원들은 예약해 둔 장사도 구경과 성게비빔밥 점심을 취소하고 부랴부랴 창원으로 돌아갔다.

배삯, 밥값을 내라는 유람선사장의 고소와 교통방해, 공무집행방해 등의 고발이 이어졌다. 거제경찰이 수사를 맡아 20여명의 학부모들이 거제경찰서에서 '피혐의자'로 수사를 받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무상급식 중단 1등공신, 경남도의원의 거제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펼침막을 들고 섰더 송미량, 최양희 두 시의원도 조사대상에 포함됐다. 도의회가 자신이 예약하고 취소한 유람선비와 밥값을 떼먹었다는 비아냥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전국적인 관심이 거제로 집중됐다.

7월 8일 거제로 연찬회를 온 도의원이 탄 버스를 향해 학부모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7월 20일경부터 더위를 식히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아이스버켓 챌린지'를 패러디한 '아이들밥 챌린지'였다. 1주일만에 500여명의 시민이 일터와 가정에서 찍은 인증샷을 올리고 1만원씩의 성금을 통장으로 '쐈다.' 다음 타자로 지목받지 못하는 사람이 무안해 할 지경이 됐다.

한여름, 한숨 돌린 학부모들은 8월 19일 고현동 GS마트앞에서 '홍준표도시자 주민소환투표 청구'를 위한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3개월간 거제에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분홍색 펼침막과 서명용지를 들고 나선 담대한 시작이었다.

거제시민본부는 거제유권자 2만명의 서명을 받겠다고 밝혔다. 말이 쉬워 2만명이지, 수임인만 받아야 하고, 정확한 주소가 기재되어야 하는 등 법적인 조건이 까다로와 쉽지 않을 걸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9월 3일, 지친 엄마들을 위해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고현성당 배진구 신부를 비롯한 종교계 인사들과 시민단체 대표자, 대우조선노조 대표자 등이 '도의원 연찬회'로 조사를 받는 학부모들에 대한 과잉수사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름 더위가 한풀 꺽인 5일, 학부모와 학생들은 고현동 웰빙공원에서 '무상급식 원상회복을 위한 온가족 한마당' 행사를 열었다. 오랜만에 웃으며 춤추고 노래부르며, 지쳐서 그만두는 일은 없겠노라고 다짐했다.

이후로 시민본부는 도지사 소환운동에 진력했다. 시장, 운동장, 축제장, 대학, 마트, 경로당, 출근길 버스앞...시민본부 화이트보드에는 무슨 선거운동이 울고 갈만큼 빽빽한 일정이 채워져 나갔다. 새벽부터, 손전등을 들고 선 밤까지 거제 곳곳에 '홍준표 소환' 깃발이 나부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놓고는 1인시위에도 나섰다. 밥과 역사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줬다.

밤늦게까지 축제가 계속된 거제대학교에서 불을 밝힌 채 서명을 받고 있다.

10월 23일 개회한 179회 임시회는 그동안 보류된 상태에 있던 '서민자녀교육지원조례'를 결국 통과시켰다. 조례통과가 있기 전날인 11월 4일, 학부모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조례제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포기하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뤄냈다.

11월 30일 최종 집계된 '홍준표 주민소환투표'에 서명한 거제시민은 목표인 2만명을 훌쩍넘어선 2만8천여명에 달했다. 거제시 유권자 15%를 넘겼다. 환호할 만 했다. 하지만 시민본부는 냉정했다. "내년 본 투표까지 끝난게 아니라서"라고 말했다. 경남본부는 30일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에 36만6000여명의 서명부를 제출했다. 경남도 유권자 14%에 해당하는 숫자다.

12월 3일, 뜻하지 않은 돌발변수가 터져나왔다.

경남도내 18개 시·군 중 공석인 2곳을 제외한 16개 시장 군수(참석자는 11명)가 도청에 모여 '홍준표 도시자 소환운동은 반민주적이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행위'라며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될까' 싶었던 서명이 예상을 뛰어넘은 호응 속에 마무리되자 급히 불끄기에 나선 것이다. 경남도 행정국장이라는 사람은 '허위서명이 많다'며 물타기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자회견은 역풍을 초래했다. 주민투표법상 공정한 선거관리 책임을 져야할 단체장이 가만 있지는 못할 망정 앞장서 '주민투표 운동이 반민주적이'라고 호도하고 나선 까닭이다.

특히 권 시장은 '거제 경기도 어려운데, 밥 하나 공짜 먹으려다 경제전체가 어려워진다'는 선문답같은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이들은 모두 주민투표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경남본부로부터 고소됐다.

누가 반민주적이고, 누가 분열과 갈등을 조장했는지 모를리 없는 도민과 국민들로부터 비웃음만 사는 꼴이 됐다. 꼬인 스텝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거제시민들은 '시민에 대한 도발'이라거나 '머슴이 주권자에 대해 일으킨 쿠데타'라는 표현을 서슴치 않았다.

경남도민 청구인서명을 선관위에 제출하기에 앞서 도청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놀란 단체장들이 '주민소환은 반민주적'이라며 홍 지사의 방패박이를 자임하고 나섰다. 하지만 '머슴들의 쿠데타'라는 조소와 비난이 잇따랐다. 두고 두고 스스로 발목 잡힐 가능성이 높다..

돌이켜보면 1년은 긴 시간이다. 하물며 '무상급식'이라는 하나의 사안을 놓고 이를 지탱해 나가기란 더욱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번번히 요구는 묵살되고, 좌절로 연속된 싸움에서 그 정신과 용기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밥'에서 시작된 싸움은 '민주'와 '자치'라는 정치 영역으로 옮겨온 지 오래됐다. 그 어떤 정당이나 정치조직도, 그 어떤 단체도 이루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승리는 쟁취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계절이 네번 바뀌도록 버텨온 학부모들의 힘, 평범한 상식이 진실임을 믿고 멈추지 않은 엄마들의 발걸음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벅찬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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