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4-03-29 17:39 (금)
[칼럼]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칼럼]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 변영호
  • 승인 2016.04.06 23:2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거시기, 우리는 약자가 아니라 선택하는 판단자


변영호(칼럼위원)
오비초등학교 교사

다음 주면 4・13총선이다. TV에서는 총선 결과에 대한 예상들과 후보들 이야기를 접시 위에 올려 놓고 요리하기에 바쁘다. 요란 법석한 요리 소리와 달짝지근한 냄새에 많은 것들이 잊혀지고 밀려 나고 있다. 4대강, 자원외교, 방산비리, 세월호, 무상급식 문제, 메르스 공포, 국정교과서, 뜨거운 한일정신대 협약, 대북제재, 개성 공단, 경제 붕괴, 테러방지법도 멀어졌다.

세월은 모든 문제 앞에서 약이다. 분노했던 약자는 살아남기 위해 슬픔과 아픔을 잊는 것을 선택해 왔다. 이것은 강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긴 세월 동안 권좌를 지키며 군림하는 것’이 모든 왕조와 모든 통치자가 좋아하는 통치기술이 된 이유다. 세월은 약자를 지치고 무감각하게 만드는 중독성 강한 마약이다.

세월 속에 분명해지는 것도 있다. 누군가는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기록으로서 언젠가는 심판받아 왔다. 사람들이 못 느끼는 것은 저마다의 동굴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굴의 용도는 다양하다. 힘들 때, 숨고 싶을 때, 피하고 싶을 때, 못 본체 하고 싶을 때, 도망가고 싶을 때,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의 굴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동굴 속은 현실 만족과 분노와 좌절을 잊게하는 공간이다.

작년 겨울에 제주에 갔었다. 모든 말들은 세월 속에서 잊었지만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단어가 있다. 섯알 오름 4・3항쟁의 현장, ‘백조일손’이라는 단어다. 백조일손(百祖一孫)이란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날 한시에 죽어 누구의 시신인지도 모르는 채 같이 묻혀 무덤도 같고, 제사도 같이 치르니 그 자손은 하나다라는 의미이다.

섯알오름 4・3항쟁의 현장, 백조일손(百祖一孫). 사진 신승민

일제에서 해방은 되었지만 일제에 빌붙은 친일파들이 사회의 주요 요직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얻은 각종 이득을 자기 자식들에게 그대로 전달했고 축척된 부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지도층과 기득권이 되었다. 이 불행한 현실과 역사 앞에서 우리는 똑같은 백조일손의 후손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약한 약자들이 동굴에서 자유롭게 나올 수 있을 때가 있다. 민주정치와 절차들이 존중받는 이유다. 그 순간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동굴 속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던 사람들이 만든 피와 땀의 결과다. 시민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선거, 그 때만은 대중은 약자가 아니다.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판단자다. 

강자들이 가장 나약한 대중을 두려워하고 대중의 눈치를 살피는 선거철도 다음주면 끝이 난다. 정치인들의 모습 중에서 가칠한 피부와 초초한 눈빛, 피곤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논리와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는 정치인들도 우리와 똑같이 강자 앞에서 겁을 먹고 눈치를 보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골든타임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서 자기가 파 놓은 동굴 속에 들어갈 사람들이 정해질 것이다.

선거철에도 동굴 속에서 안 나오는 사람도 있다. 동굴 속 안락함에서 부풀어 오른 배, 이 불어난 배 때문에 동굴 속에서 나오지 못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을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

내 배를 봤다. 무관심과 현실의 안락함에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불러온 배 때문에 새로운 역사를 죽일까 두렵지만 아직은 아니다. 취업 앞에서 절망한 조카의 분노를 알고 있고,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직장 생활을 정리한 형님의 아픔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굴 속에서 배를 불린 우리지만 4・13총선에서 불러온 배 때문에 미래를 품은 역사가 죽는 것을 그냥 볼 수는 없다. 이제 막 동굴을 파기 시작한 젊은 유권자들이 동굴밖으로 달려 나왔으면 좋겠다.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이다. 암울하고 억울한 역사 속 백조일손의 후손들이 같은 총알을 쏘았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은주 2016-04-07 10:49:02
총선을 맞아 꼭 읽어봐야하는 글인것 같습니다.
제목이 참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