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4-04-24 08:55 (수)
자잘한 행실을 삼가지 않으면 큰 덕을 더럽힌다
자잘한 행실을 삼가지 않으면 큰 덕을 더럽힌다
  • 거제뉴스광장
  • 승인 2016.04.20 01: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번역문]
창가에서 책을 보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책장이 흩날린다. 부시를 칠 때 돌이 무디어 부싯깃에 불이 잘 붙지 않는다. 노비를 세 번이나 불렀는데도 곧바로 응대하지 않는다. 밤길을 가다가 기둥에 머리를 부딪친다. 행장을 꾸려 떠나려는데 갑자기 비가 내린다. 의원을 불렀으나 의원이 고의로 늦게 온다. 해 질 무렵 나루에 당도했는데 대기하고 있는 배가 없다.

이러한 일을 당할 경우 버럭 화를 내어 화평한 기운을 손상해서는 안 된다. 우선 마음을 안정시키고서 다시 상황에 알맞게 처리해야 한다. 이것을 작은 일이라 하지 말라. 작은 일이지만 모두 인간이 되는 바탕이다.

[원문]
當牎看書, 風忽吹翻. 火刀打石, 石頑而火不延絨. 三呼奴婢, 不卽應. 夜行頭觸柱. 束裝將行, 雨忽作. 邀醫, 醫故遅來. 日暮當津, 船不卽待. 此等事, 皆不可激觸嗔怒損吾和氣. 姑安心, 更爲調度. 莫曰小事. 俱是作人之基.

-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27 「사소절(士小節)」, 사전(士典)」

[해설]
<논어> 자장편에는 공자 제자 사이에 소소한 예절을 놓고 다투는 장면이 나온다.

“자유가 말했다. ‘자하의 제자들은 집안 청소하고 손님과 대화하며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은 잘한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지엽적인 일이요, 근본적인 것은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자하가 그것을 듣고 말했다. ‘아! 자유의 말이 지나치다. 군자의 도에 있어 어느 것을 먼저라 하여 전수하며, 어느 것을 뒤라 하여 게을리하겠는가? 초목에 비유하면 종류에 따라 구별이 있는 것과 같다.’

[子游曰 子夏之門人小子 當洒埽應對進退則可矣. 抑末也 本之則無 如之何?子夏聞之曰 噫! 言游過矣. 君子之道 孰先傳焉 孰後倦焉? 譬諸草木 區以別矣.]”

자유와 자하 간의 논쟁은 집안 청소하고 손님과 대화하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예절, 즉 일상의 소소한 에티켓이 공부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자유는 그것들이 지엽적인 일이어서 근본이 없다고 본 반면 자하는 사람의 재능에는 차이가 있어 소소한 일이라도 차근차근 배워나가면 근본에 나아갈 수 있다고 반박한다. 『논어』에서 두 사람의 논쟁은 결론 없이 끝이 났다. 아마 그 자리에 판정을 내릴 수 있는 스승 공자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주자는 『논어집주』를 내면서 자하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는 주석에서, 배우는 자의 수준이 깊고 얕음을 헤아리지 않고 높고 원대한 것만을 말해서는 안 된다며 순차적인 가르침을 강조했다. 주자의 이런 생각은 아동교육서 『소학』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실제 쇄소(灑掃), 응대(應對), 진퇴(進退)의 절차는 소학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예절의 하나이며 개인 수양의 방법으로 중시되었다.

주자학을 국시로 내건 조선이 『소학』을 중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천자문, 동몽선습 등을 익힌 어린이들은 『소학』을 공부하며 덕성을 쌓고 사회를 보는 눈을 키워갔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소학』의 내용이나 체계가 조선의 실정과 맞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율곡 이이가 『격몽요결』을 펴낸 이후 『대동가언선행』(유직기), 『사소절』(이덕무), 『동현학칙』(황덕길), 『해동소학』(박재형), 『대동소학』(김형재)이 잇따라 출간된 것은 이 때문이다. 

실학자 이덕무가 쓴 『사소절』은 본격적인 ‘한국판 소학’이라고 할 수 있다. ‘사소절’은 선비가 지켜야 할 에티켓이라는 뜻이다. 『대동소학』 등 조선 학자들이 편찬한 소학들이 비록 우리의 콘텐츠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책의 체제에서는 주자의 『소학』을 답습하고 있다. 그러나 『사소절』은 책의 구성에서부터 『소학』과 달랐다. 내용도 앞서 간행된 남의 문헌에서 뽑아 쓰지 않고 이덕무 자신의 언어로 채웠다. 선비의 예절[士典], 여성의 예절[婦儀], 어린이의 예절[童規] 등 세 항목으로 나누어 쓴 『사소절』에는 이덕무가 경험하고 목격한 내용이 적지 않게 실려 있어 설득력을 더한다.

“남을 부를 때 ‘이놈, 저놈’ 또는 ‘이것, 저것’이라 하지 말라. 아무리 비천한 사람일지라도 화가 난다 해서 ‘도적’이니 ‘개돼지’니 ‘원수’니, 또 거기에다 ‘죽일 놈’이라 욕하거나 ‘왜 안 죽니’라고도 하지 말라.[勿稱人以漢以物 雖卑賤者 因恚怒 勿稱賊稱畜稱讐 又從而罵曰可殺 又曰 胡不死也]”

“사람들이 온종일 모여서 지껄이는 말은 농담, 바둑이나 장기 이야기, 여색 이야기, 술과 음식 이야기, 아니면 벼슬에 관한 이야기나 가문의 자랑에 대한 것에 벗어나지 않으니 역시 민망스럽다. 남과 더불어 학문을 논하는 것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羣居終日 其爲言談 不出於嘲諧博奕女色酒食科宦升沈家閥高下 其亦可悶也 對人必講論經史 余不及見矣]”

“상추, 참취, 김 등에 밥을 싸서 먹을 때는 함부로 손가락이나 손바닥을 사용하지 말라. 이는 더럽혀 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반드시 먼저 밥을 둥글게 뭉쳐 숟가락으로 떠서 밥그릇에 걸쳐 놓은 다음, 젓가락으로 쌈쌀 채소 두세 닢을 집어서 떠놓은 밥 위에 반듯하게 덮은 후에 비로소 숟가락을 들어 입에 넣고는 곧 장을 찍어 먹는다. 입에 넣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크게 싸지 말라. 볼을 크게 부풀리는 것은 예에 어긋나기 때문이다.[萵苣馬蹄菜海苔包飯 勿徒使指掌 惡其褻也 必先團飯于匙 橫置器口 次以箸挾包菜二三葉 整覆于團飯 始擧匙入口 旋勺醬以啖 勿大包難容口 以其輔墳而不典也]”

이덕무가 『사소절』에 소개하고 있는 소절, 즉 작은 예절은 924개 조항이나 된다. 이 많은 에티켓을 어떻게 다 지킬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에티켓은 배려와 공감, 나눔의 정신을 조금이라고 가지고 있다면 지킬 수 있는 덕목들이다. 법과 규범을 지키면 됐지, 사소한 에티켓에 구애받을 필요가 있느냐고 대범한 척 외치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말한 사람들은 “자잘한 행실을 삼가지 않으면 끝내는 큰 덕을 더럽힌다.[不矜細行 終累大德]는 『서경』의 구절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덕무의 말처럼 삶이란 시시하고 하찮으며 가치 없는 일들의 축적이다. 그래서 좋은 삶이란 바로 소절(小節)을 살피며 조심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틀 뒤면 제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가 실시된다. 후보자들은 저마다 현란한 공약을 내세우고 그럴듯한 구호로 유권자들의 환심을 구한다. 정당의 슬로건, 후보자의 공약, 가치 등 내세우는 대절(大節)에서도 차별성을 찾기가 어렵다. 이럴 때는 후보들의 소절을 따져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사석이라 할지라도 막말은 없었는지, 돈과 권력을 믿고 유권자들을 우습게 보지는 않았는지, 약자나 소외계층을 얕보거나 탄압하지 않았는지, 공천 과정에서 비리는 없었는지…. 이덕무가 말하는 소절을 국회의원 후보에게 적용한다면 교양 있는 언행, 법률 준수, 국민의 의무 이행 등이 해당될 것이다. 굳이 수신제가의 덕목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윤리적인 인간, 도덕적인 인간은 공인이 갖추어야 할 첫째 조건이다.


글쓴이 : 조운찬

•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장
• 경향신문 편집국 문화부장과 문화에디터, 베이징특파원을 지냈다.

 

 

 


- 이 글은 '한국고전번역원'의 허가를 얻어 <거제뉴스광장>에 게재하는 것입니다.

-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www.itkc.or.kr)  ‘고전산문’ 코너에서 더 많은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