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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티벌, 블루시티팜빌리지를 아시나요
포레스티벌, 블루시티팜빌리지를 아시나요
  • 김용운 대표기자
  • 승인 2016.04.30 21:3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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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행정, '먹물티' 좀 빼자

29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거제시 하청면에 있는 '맹종죽 테마파크'에서 대나무를 소재로 한 축제가 열리고 있다. 숲속음악회, 글짓기, 사진촬영, 죽순차·죽순음식 시식회 등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성하다. 이곳이 전국에서도 명성이 높은 맹종죽 산지인데다, 죽순이 나기 시작하는 특별한 때에 벌이는 축제라 호기심을 자극할 여지가 많다.

그런데 이를 알리는 보도자료에는 이 축제를 '제5회 죽림포레스티벌'이라고 소개했다. 고개가 갸우뚱했다. 쉬지 않고 달리는 '포레스토 검프'가 떠오르고, 페스티벌을 잘못 쓴 것인가 싶기도 했다. 한참을 생각한 후에야 한자어와 영어가 합쳐진 신조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대나무 죽(竹)에 수풀 림(林)을 합한 '죽림'이라는 한자어에다 숲(forest), 휴식(rest), 축제(festival)의 앞, 뒤 글자를 갖다 붙였다. 

수풀 림(林)과 포레스트(forest)는 같은 말이니 굳이 두 번이나 쓸 필요가 없고, 축제는 휴식 그 자체니 '축제' 한 단어로 족하다. 죽(竹)보다야 알기 쉬운 '대나무'를 쓰는 편이 낫다. 요약하면 '제5회 하청 대나무숲 축제' 정도면 쉽고 정확하게 행사의 취지와 내용이 전달된다.

그런데 이를 어렵고도 정체불명인 뒤죽박죽 이름으로 쓰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한국어로 표기하면 뭔가 없어 보이고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시민이 알아먹지도 못하고, 택시기사도 찾아가지 못할 행사명을 지어놓은 '고상하고 유식한' 이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거제시 농업기술센터가 추진하는 중요한 정책 중에 '블루시티팜빌리지'라는 것이 있다. 거제시의 9개 면과 농촌을 끼고 있는 3개 동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살기좋은 농촌 만들기' 프로그램이다. 총 2억 8600만원의 사업비가 들어간다. 각 면·동에서 사업을 신청하면 이를 선정해 단계별로 예산을 지원하는 주민주도형 '마을만들기'사업이다. 

그런데 이름을 요상한 '블루시티팜빌리지'라고 만들어 붙였다. '블루시티'(blue city)가 거제를 상징하는 말이고, '팜'(farm)은 농장, '빌리지'(village)는 마을이라는 것 정도는 아는 '배운'사람도 이 사업이 어떤 내용인지는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얼핏 들으면 무슨 전원주택단지 같은 어감이다.

사업을 기획했거나 담당하는 부서의 몇몇 공무원 이외에 '아 그거구나'라고 이 말의 뜻을 알만한 시민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실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마을 주민인들 이 용어를 이해하고 있을까. 그런데도 왜 이를 고집하는 걸까. 왜 '살기좋은 거제농촌 만들기'라고 하면 안되는 걸까. 꼭 배운 티를 내야만 하고, 것도 영어를 써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륀지'족이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하도 오래 돼서, 하도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곳이 돼서 이젠 웬만큼 익숙해졌지만 독봉산 '웰빙공원'도 마뜩찮기는 마찬가지다. 2010년 6월 준공된 이 공원은 고현지역의 대표적인 공원이라는 상징성을 갖추기 위해 시민공모까지 했다. 총19개의 공원 이름이 접수됐는데 시는 이름을 정하기 위해 심의회까지 만들면서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게 정성들여 정한 이름이 '웰빙'공원이다!

당시 '웰빙'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었고, 온갖 TV 프로그램에서부터 먹는 것, 입는 것, 잠자는 것까지 웰빙이 아니면 명함도 못내밀 지경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라도 지역을 대표하는 공원 이름에 전혀 '지역성'이나 '향토성'이 가미되지 못한 영어를 조합해 갖다 붙인 것은 경솔했다. 왜 고현(독봉산)시민공원이나, 가족공원이 되지 못했을까. 너무 촌스럽거나, 평범해서?

언젠가 우리의 자녀들이 "엄마, 웰빙 공원이 무슨 뜻이에요"라고 물을 때, "아, 그건 삶의 질을 높이자는 공원이야"라는 4차원의 답을 해야 할까. 그도 아니면 "그냥 공원이름이야. 외워"라고 뭉개버려야 할까. 그나마 '웰빙파크'가 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이같은 영어 남발과 정체불명의 이상한 조합의 '효시'는 거제를 상징하는 '블루시티'(blue city)다. 2002년 이명박 서울시장이 "하이 서울, 위 아 서울라이트"(Hi Seoul. We are Seoulite)를 외치기 시작한 이래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자기만의 정체성, 지향하는 미래를 담은 구호를 도시이름 앞에 갖다 붙이기 시작했다. 오로지 영어로만.

'하이 서울'(Hi, Seoul)을 필두로, '다이나믹 부산'(Dynamic Busan), '칼러풀 대구'(Colorful Daegu), '플라이 인천'(Fly Incheon), '잇츠 대전'(It's Daejeon), '울산 포 유'(Ulsan for You) 등과 같이 광역시는 말할 것도 없고 기초단체까지 이 대열에 합류했다. 거제가 '블루시티'가 된 것도 이 즈음이다.

세계화의 물결에서 자치단체가 세계를 향해 자신의 정체성을 영문으로 표기하는 것에 대해 토를 달 생각은 없다. 문제는 언젠가부터 이같은 영어식 표기가 한글을 밀어내고 자취를 감추게 했다는 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도시의 구호(슬로건)가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뜻과 의지를 하나로 모으기 위한 것이 우선이라는 점에서 주민이 알지도 못하는 영어식 구호만 남발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굳이 영어로 써야 한다면, 한국어를 주 구호로, 영어를 보조 구호로 하면 충분하다. '푸른도시 거제'가 'Blue City Geoje'보다 더 많이 불려져야 하고, 더 많이 사랑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그 어디를 봐도 '푸른도시 거제'는 없다. 관광도시 통영의 구호는 '섬들의 땅 통영'(Land of Islands)이다. 영어가 먼저 나오지 않는다. 보조수단일 뿐이다.

이러다 보니 거제시의 많은 행사나 장소의 이름을 정할 때 알지도 못하는 영어가 판을 치고 마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앞으로 생겨날 수많은 광장과 공원, 치러질 수많은 행사에 얼마나 더 많은 국적불명의 오염된 영어가 지배하게 될지 알 수 없다. 장승포항에 들어설 수변공원의 이름을 예상해 보자. 장승포 바다공원, 바다광장, 해변공원, 이런 이름 대신 '비치파크'가 생기지 말란 법도 없다.

언급한 포레스티벌, 블푸시티팜빌리지, 웰빙공원은 물론이고 블루시티투어와 같은 이름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영어식 이름을 갖다 붙이면 '국제화' '세계화'에 바짝 다가간 것 같은 착각을 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정반대다. 이곳에 살아가고 있는 주민을 객체로 소외시킬 뿐이다. 영어를 써야만 품위가 있고 그럴듯한 체면을 세운 것 같은, 좀 안다 싶은 사람들의 희안한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그 속에서 시민과의 소통이나 친절행정은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시민은 안중에도 없고 행정의 과시욕만 넘친다. 시민에게서 돌아오는 건 박수가 아니라 코웃음이다.  

하나 더.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가 관리하는 공공청사에는 엘리베이터가 2대 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얼마 전부터 매일 1대씩 돌아가며 운행한다. 그런데 당일 운행하지 않는 엘리베이터 옆에 '운휴운행'이란 팻말을 걸어놓았다. 공공청사를 방문하는 수많은 시민들 중에서 이 뜻을 아는 시민들이 얼마나 될거라 보는가. 운행을 한단 말인가, 안한단 말인가. 그냥 "이 엘리베이터는 에너지절약을 위해 오늘 운행하지 않습니다"라고 하면 안되는 것인가. 행정, 제발 '먹물티' 좀 그만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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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2016-05-12 08:44:49
먹물티 좀 없어지길 간절한 바램임 거제시청 공무원 정신차리게 언론사 역활 중요하게 생각함
타 인터넷 신문도 공유하여 공무원 못된 관행 외래어 남발 잦태 없애버리길 바람
좋은기사 감사드림 순수한 우리말표현 구호 등 사영 켐페인이라도 전개 함이 어떨까요???

애독자 2016-05-04 11:43:13
경남도민일보에서도 김기자님과 비슷한 논조로 지적한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관(官)투' 용어 사용이 일반 시민을 헷갈리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쉬운 우리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데 거제시의 개선을 기대합니다.

지나가다 2016-05-03 11:07:57
좋은 글입니다. 공무원들 많이 각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