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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호 시장님, 이건 아닙니다
권민호 시장님, 이건 아닙니다
  • 김용운 대표기자
  • 승인 2016.10.03 14:49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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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지심도 국기게양대, 과연 섬의 가치를 더하는 것일까요

권민호 시장님. 가을입니다. 시민들 만큼이나 어쩌면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계시지요?

폭염을 지나 추위로 접어들기 전, 시민들은 얼마 안되는 가을이 주는 상쾌한 기운을 즐기려 집을 나서고, 거제 곳곳에서는 시민들을 위한 온갖 축제며 문화 행사가 마치 국화가 피어나듯 펼쳐지고 있습니다. 조선불황으로 덮쳐 온 시름도 잠시 잊고, 콜레라도 물러가 모처럼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우울한 소식이 있습니다. 며칠 전 거제시에서 지심도에 국내 최고 높이의 태극기 게양대를 세우겠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시장님도 당연히 알고 계실테고, 그 계획을 승인하셨겠지요. 4일 업무협약식을 한다고 하니 말입니다.

시장님, 이 계획을 재고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시장님이 얼마나 이 일에 심사숙고를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언론에 이같은 사실을 알린 것은 불과 나흘 전입니다. 군사작전 하듯이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을 일이 아닙니다.

걱정스러운 대목은 국내 최고 높이 국기게양대(태극기)가 지심도가 앞으로 우리 거제에서 차지하게 될 '자연생태관광휴양지'라는 위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태극기는 우리나라의 국가 상징물입니다. 자연과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자그마한 섬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국가상징물이 필요한 지는 다시 생각해 볼 일입니다.

지심도는 '자연·생태·환경·역사·힐링'을 테마로 한 거제의 새로운 관광자원이 되어야 한다고 시장님도 입이 아프도록 강조하지 않았나요. 단지 거제시민 만이 아니라 외도를 능가하는, 전 국민의 관심을 끄는 새로운 관광 랜드마크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그것이 국방부와 수년간에 걸친 줄다리기 끝에 거제시로 소유권을 넘겨오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자연생태관광휴양지'의 근본 철학은 그 곳을 찾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느끼고 생각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느껴 보는 여백이 많은 그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힐링'은 무엇을 들이밀어서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국기게양대는 '생각'을 강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있는 것이라곤 원래부터 있던 좁은 길밖에 없는 제주 올레를 떠올려 보세요. 팻말조차 설치하는 것도 조심스러워 길바닥에 또는 담벼락에 조그만 화살표만 그려 둘 뿐입니다. 제주의 오름과 숲길과 바다와 섬이 이미 넘치는 관광자원이기 때문입니다. 사색을 방해하지 않고 마음을 추스리도록 돕는 것이 힐링 관광지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섬 정상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높이 111미터의 거대한 태극기 게양대가 이 섬을 찾는 시민과 관광객에게 과연 어떤 느낌을 줄 지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시에서 밝힌 것처럼 '애국심 고취'와 '국위 선양'이라는 각성을 안겨다 줄까요. 아닐 겁니다. 지심도를 찾는 시민이나 관광객은 휴전선 땅굴 견학을 오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의 기상을 느끼려 백두산을 찾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지심도가 영토 분쟁이 있는 국경지대도 아니고, 호시탐탐 이 곳을 노리는 적대국의 타겟도 아닙니다. 생뚱맞다는 느낌도 바로 여기에서 나옵니다. 제주 마라도의 제일 남쪽 끝에 조차 '대한민국 최남단'이라는 표지석 하나만 있을 뿐입니다.

'부어라 마셔라'를 위해 찾지도 않습니다. 그저 지심도가 가진 동백 숲을 보고, 그 아름드리 나무가 내뿜는 자연의 위엄을 느끼고, 숲이 인간에게 살포시 내준 오솔길을 걸으며, 눈 앞에 펼쳐진 태평양을 바라보며 자신과 가족과 일을 되돌아 보기 위함입니다. 그럼으로써 삶의 에너지를 회복하는 것일테죠.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머무르는 기간 동안 필요한 최소한의 편의시설을 정비하고 보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방문객들이 섬의 역사와 자연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설물도 필요할 겁니다. 필요하다면 아름다운 문학관이나 미술관, 박물관이 들어설 수도 있겠지요. 

필요한 것은 지심도의 원형을 해치지 않고 지심도의 가치를 더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국기게양대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인지는 보다 분명해 집니다.

시장님, 최고 높이 국기게양대가 세워지고 최대 크기 태극기가 지심도에 내걸려야 하는 이유를 시민들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일제가 강점한 곳이었다는 점을 기리기 위한 목적이라면, 이미 지심도에 국기 게양대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심도에 사는 수십명의 주민이 호주머니를 털어 광복 70주년을 맞은 지난해 8월 15일 세웠습니다. 일본군이 욱일기를 내걸었던 바로 그 곳입니다. 이번에 발표한 '최대 국기게양대'보다 훨씬 더 의미있지 않나요. 사람이 감동받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규모가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진 스토리입니다.

'최고, 최대'가 가지는 효과는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 시가 기대한 대로 지난 29일 보도자료가 나간 뒤, 전국의 언론은 삽시간에 '최대' '최고'를 달아 돈 안드는 홍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근시안적입니다. 거제가 널리 알려진다는 것은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좋은 의미로 알려져야 하지 않나요. '거제에 최고 높이 국기 게양대가 있다더라'고 전 국민에게 알려진들 그것이 거제에 무슨 큰 도움이 될까요. 그걸 보러 거제를, 지심도를 찾을까요.

지난 시절 우리는 무슨 기념물만 세우면 '최대,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그 바람에 대부분의 기념물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수십미터 높이의 그 뾰족하고 날카로운 탑, 차가운 대리석 돌덩어리가 우리가 만들어낸 기념물의 전형입니다.

거제의 충혼탑이나 옥포대첩기념탑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 앞에 선 사람들은 압도 당하고 왜소함을 느낍니다. 높이 111미터의 국기게양대는 아파트 40층 높이입니다. 장평에 짓고 있는 47층, 49층 아파트를 한 번 보세요. 그와 엇비슷한 높이의 인공 구조물이 '자연의 섬' 한 복판에 서 있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요.

지심도가 거제시로 반환된 것을 기념할 만한 기념조형물이 필요하다는 시장님의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국기게양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국내 최대 높이의 거대한 인공구조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시장님이 거제의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 더 고민하고 더 많은 관심을 가지시겠지만, 한 두 사람의 판단만으로 결정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보다 많은 시민들의 생각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26만 시민이 일부 전문가나 몇 몇 공무원보다 못하지는 않을 겁니다. 전문 기술을 요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것이 좋겠느냐는 아이디어를 모으는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국민 성금 20억원을 모은다고 하셨죠. 국민 성금까지 갈 것도 없을 듯 합니다. 정말 지심도 반환을 축하하고, 우리 거제시민이 이 지심도를 앞으로도 영원히 '자연생태'가 뛰어난 '친환경적인 관광지'로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목표라면 '거제시민 모금'이 훨씬 의미있는 일일 겁니다.

가령 모든 시민에게 기회를 주고, 한 사람이 1만원씩을 내게 하고, 각자의 소망을 담은(지심도와 관련한) 짧을 글을 타일로 찍어내게 하는 겁니다. 그것이 수천개 모이면 그것 자체로 관광 자산이 되고, 외지 관광객들이 '정말 거제시민들이 지심도를 사랑하는구나'하고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시민들의 자부심도 커질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겠죠.

시장님, 시간이 없습니다. 당장 내일 업무협약식을 한다고 하셨는데, 좀 더 시간을 갖고 고민해 보실 것을 부탁합니다.

혹여 나중에라도 시민들의 반발이 빗발치고 전국에서 비판적인 시각이 터져나오기 시작하면 그때 가서 '접고' 다시 하기에는 너무 소모적이지 않나요.

이미 지난번 '김백일 동상' 설치 건으로 시는 홍역을 치렀습니다. 덜컥 일부의 의견만 듣고 설치를 승인했다가 '친일' 논란이 일자 철거하려 해도 반발에 부딪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시가 결국 철거 소송까지 했지만 패소하고 만 안타까운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어떤 것이 지심도를 더 빛나게 하는 일인지, 보다 많은 시민들의 생각을 듣고 반영해 주시길 바랍니다. '시장'은 그런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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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2017-01-04 11:31:26
초고층 아파트, 케이블카, 주거지 인근에 풍력 등
높은 것 대개 좋아하나 본데 일정 때 왜놈들이 조선의 정기를 끈으려 징을 박 듯 권시장의 야욕으로 지심도에 철심을 박는다면 "이거 내가 시장 시절에 박아 놓은거야"라는 자랑거리가 아니라 생각 없는 조두라는 야유만 끝없이 받을 것이요

박진욱 2016-12-16 12:25:23
장승포가 고향인사람으로서 결사반대합니다.
초대형 국기게양대는 천혜의 섬 지심도보다는, 일본과 영유권 분쟁으로 대립하는 독도에 건립하는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스광장 대표님의 기사에 적극 동참합니다.

자연보호 2016-10-18 13:30:30
거제도말로 너거지금문소리고 지심도가 공무원 니끼가 누구맘대로 막생각해서 자연을 내리 부술라카노 자연그대로 두고 보면되지 문디손들 할일도없고 돈도많나보지 훗날 후손들이보고 머라쿠것노 거제어른들 참할일도 없엇나보지 폼만잡고 뽄대없이 여기가 일본동경인줄 알앗나하고 고만 가만히 내삐두몬 지심도사람들이 다알아서 할끼고 부족한거있다카몬 지원하고 행정이 그러는거 아이가 ㅎㅎㅎㅎㅎ

시민~2 2016-10-05 09:59:16
기사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언론에 '국학원'이 주도하여 국민성금운운하고 '평양스러운' 111m국기게양대 설치라 하여
정말 기가막힌 70년대식 착상이라 느꼈네요....

심각한 시민들의 저항이 있을 것같습니다..
또 관변주변의 이런저런 단체앞세워 찬성하는 연명부같은거 만들어
분란을 야기 시키지 않을까 우려 됩니다...

거제시민 2016-10-04 17:41:28
참으로 좋은 내용입니다 심사 숙고 할 필요 있습니다

거제시 행정의 단편을 보는 것 같네요

저도 신문 보고 황당 했는데 정신 차리세요 누가 기안 했는지 누가 공사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