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한 대우조선노동조합 위원장은 10월 2일 결선투표까지 가는 치열한 선거전을 치르고 16대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결사체 중 가장 긴 역사를 가진 ‘노민추(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 소속이다. 새로운 집행부는 약 3주간의 인수인계절차를 마친 30일, 위원장 이·취임식을 통해 2년간의 공식업무를 시작했다.
7천1백여명의 조합원은 말할 것도 없이 수많은 하청기업 노동자, 미조직 일반노동자, 대다수 시민은 노조위원장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에 관심이 많다. 노조가 거제의 각종 현안에 있어 사회적 약자와 함께해 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집행부를 이끌며 거제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그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을 놓고 회사와 재교섭 준비에 여념이 없는 그를 11월 7일, 위원장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상수 수석부위원장이 동석했다.
- 늦었지만 당선을 축하한다. 당선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특히 1차투표에서 1위를 한 것은 이변이라는 말도 있다. 현 위원장 개인능력인가, 노민추의 조직력인가?
개인이 능력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나? 조선소가 위기일때 조합원들은 항상 노민추를 선택했다.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고 확장하는데 있어 노민추의 양심과 경험, 자기욕심 갖지 않는 것을 믿어준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노민추 뿐만 아니라 민주대의원협의체와 같은 타 민주세력까지 연대한 ‘범민주후보’였던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 ‘조선소의 위기’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경영상황이 안 좋거나 국가적으로 친기업정책으로 인한 노동탄압이나 민주주의 후퇴로 인해 노동자의 권익 또한 후퇴될 수 있는 정세, 이런 것을 위기라고 보고 있다. 회사와의 노사문제만 놓고 보면 그간 너무 낮은 기본급 인상, 통상임금 문제가 올해 ‘임단협’에서 해결되지 못한 것 등에 있어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봐야 한다.
- 그런 상황이라면 당면한 현안이 한 두 개가 아닐 텐데, 가장 큰 현안을 꼽으라면 어떤 것인가?
가장 당면한 것은 아까 말한 ‘상여금의 통상임금화’이다. 내년에 있을 임금협상에서의 기본급 현실화와 생활안정, 회사매각에 대한 올바른 대응으로 고용안정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이를 3대 핵심현안이라 본다. 뿐만 아니라 연말연초 부실 계열사 정리문제도 크다. 잘못되면 모기업인 우리 대우조선의 동반부실 우려가 있다.
- 어떤 계열사가 어느 정도 부실한가?
자회사, 투자회사, 위탁경영 등 계열사 종류가 다양하다.(위원장은 구체적 통계치를 보여주기 위해 이날 발행된 노동조합 소식지 ‘새벽함성’을 펼쳤다). 부채비율이 높거나 대규모 적자를 계속 유발하는 곳들인데, 부채비율 580%인 대우조선해양건설, 부채비율 800%에다 당기순익에서 240억원 손실을 본 풍력산업회사인 드윈드, 자기자본이 마이너스 4천4백억원에다 부채가 1조3천6백억원에 달하는 루마이나조선소 등이 대표적이다. 삼우중공업, 대한조선 등 2013년말 현재 17개의 대우조선해양 계열사 대부분이 경영상태가 좋지않다. 잘못된 경영에서 비롯된 책임을 대우조선 조합원에게 떠맡기려 할 가능성이 높다.
- 이들 기업이 모기업인 대우조선에 어떻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건가?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이사회를 통해 경영전반을 장악하고 있고, 임기제인 사장은 재임기간의 성과에 골몰해서 장기적으로 회사의 비전이나 미래를 놓칠 가능성이 많다. 결국 계속된 부실을 메우기 위해 대여금을 늘리거나 부실기업을 떠맡기는 등의 이사회 결정에 사장이 동의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내야 할 일이다.
- 경영상의 책임문제는 ‘주인없는 회사’라는 근본문제 때문 아닌가? 결국 회사매각 문제가 핵심이 되겠는데 그간 어떻게 진행되어 왔나?
매각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1998년 산업은행의 매각 발표이후 한화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가 되었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2009년 년말에 재차 매각 발표가 있었고, 2013년 1월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에서 ‘국민행복 추진기금’ 18조원을 충당하기 위한 방법으로 한국자산공사(캠코)의 지분을 매각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2월 캠코의 지분 약 17%가 금융위원회로 이관되었고 이중 5%를 현대증권 등에 매각했다. 지금은 산업은행이 가진 31% 지분을 어떻게 매각하는가 문제가 남아있는 것이다.
- 매각문제가 시민들의 지대한 관심사이기도 하다. 시민대책위까지 만들어져 활동하기도 했는데, 노조의 입장은 무엇인가?
핵심은 고용을 보장해야 하고, 기술과 국부의 해외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거다. 이를 위해 노조는 해외매각 반대, 골드만삭스 같은 투기자본반대, 노동조합참여 보장 등을 주요 원칙으로 정하고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람직한 매각’이다. 경제논리에만 기대지 않고, 고용과 지역경제, 국가경제 모두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노동자와 시민이 따로 없다.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회사는 물론 지역경제의 붕괴는 뻔한 현실이 된다.
- 이같은 산적한 현안들을 해결하려면 집행부로 힘이 모아져야 하는데 현재 집행부는 노민추 쪽에서 맡았는데 의결기구인 대의원은 소수이지 않나? 제대로 힘을 가지고 조합을 이끌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있다.
대의원 수는 65명이다. 이중 자칭 ‘민주파’라고 하는 분들은 15명 남짓이다. 속한 조직만 놓고 보면 당연히 소수이고 어려움이 없지 않을 거다. 하지만 문제는 어느 조직에 속하느냐가 아니라 노조 집행부가 얼마나 노동조합답게 일을 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 본연의 역할, 즉 노동자의 권익보호, 삶의질 향상, 노동조합의 민주적발전 같은 대명제에 충실하고 헌신하면 큰 길에서는 같이 할 것으로 믿는다. 집행부의 활동이 조합원에게 신뢰를 받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생각하면 간단하다.
- 공장 밖으로 이야기를 옮겨보자. 88년 설립이후 대우노조는 단순한 노동자 이익집단을 넘어서 지역의 민주주의 확대와 진보, 노동정치에 큰 기여를 해왔다.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겠는가?
노동조합이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군다나 조직화된 대규모 집단이기 때문에 이 힘을 지역사회의 개혁이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함께하는 것은 당연하다. 내 직장을 떠나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것, 이건 우리 조합원들 대부분이 공감하는 부분이고 오랜 기간 쌓아온 전통이기도 해서 어느 집행부가 된다고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논의하고, 필요하면 언제나 약자와 정의의 편에 서도록 노력하겠다. 그 한 축이 지방정치라 할지라도 좋은 지방정치가 우리 노동자와 시민 모두에게 좋은 영향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함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 사회적으로 화두인 비정규직(주로 사내하청) 얘기를 해보자. 대우조선은 정규, 비정규직 비율이 3:7 정도로 비정규직이 절대적으로 많다. 숙련도도 낮고 위험한 일에 많이 배치되다 보니 대형 산재사고도 주로 비정규직에서 발생한다. 노조와 회사가 더 철저히 대책을 세워야하지 않는가?
인정한다. 우리 회사에는 조합원 7천여명, 관리직 5천여명, 협력사(사내하청) 약3만5천명 해서 총 5만여명이 공장울타리 안에서 일한다. 정규직 비정규직 비율이 3:7이 맞다. 올해초 한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사업장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는 것은 안정되지 못한 일자리라는 뜻이다. 그만큼 안전에 있어 취약할 수가 있다. 노조차원에서 이들의 안전대책을 강화하겠다. 무엇보다 안전한 작업장 환경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업장에서의 안전실태 점검과 사고예방에 최우선을 두고 집행하겠다. 회사도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
-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복지도 지금보다 개선되어야 한다고들 이야기하는데, 임금단체협상에서 이 문제를 요구안으로 낼 생각은 없나?
우리가 경영자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권한을 가지고 하기는 어렵다. 성과금 문제는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인 반면 하청업체 기본급 인상 같은 문제를 요구안으로 삼은 적은 지금껏 없다. 전국적으로 최저임금의 현실화 같은,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그 성과를 나누는 투쟁에는 적극적으로 앞장설 것이다. 비정규직이 곧 우리 가족의 문제이기도 한 상황에서 이 문제를 비켜날 수 없고, 무거운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한 회사 내에서 다 해결할 수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음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 결국은 이들이 스스로 조직화해서 자신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 나서야 한다고 보는가?
궁극적으로는 그래야 한다고 본다. 88년 노조설립을 위해서, 그리고 이후 노조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고, 감옥을 갔다 온 사람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화하기는 쉽지 않다. 고용이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더욱 그렇다. 거제지역, 경남지역 차원에서 필요하다면 이들의 조직화 사업을 직, 간접적으로 적극 지원할 것이다.
- 거제는 세계적 조선산업 도시이자 노동자밀집 도시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까지 합하면 거의 1만명 이상이 노동자와 그 가족들로 추산된다. 그 명성에 걸맞게 ‘노동’이라는 가치를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필요할 텐데, 그런 시설이나 활동이 없다. 어떻게 생각하나?
좋은 지적이다. 노동을 신성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배우지 않는가? 하지만 실상은 작업복 입은 아버지, 어머니, 이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거제시민 중에 자신이나 가족이 노동자가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특히 거제의 조선노동자는 한국경제를 일으키고 선도하는 최일선에 있다. 그 땀의 가치를 인정해줘야 한다. 노동자의 집이든 노동회관이든 노동의 역사를 전시하고 그 가치를 전달하고 노동자들 간에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진주에도 2곳이나 있다. 행정과 기업이 힘을 모아야 한다. 특히 미래세대에 우리 거제의 노동자들, 노동의 가치를 느끼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초등학교부터 우리 지역에 맞는 부교재를 만들어 현장을 방문하고 토론하는 학습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거제의 정체성에도 맞다.
- 혹시 해야 하는데 못한 이야기가 있는가?
대우조선 노동조합에 대한 시민의 기대가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노동조합이 제 역할을 다함으로써 지역주민과 사회적 약자가 조금이라도 희망을 갖고 거제사회가 나아지도록 노력하겠다. 비판이 타당하다면 받아들일 것이다. 시민의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
(기자주) 평소 온화한 성품에 치밀하고 합리적이라는 평을 듣는 현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고심과 진지함이 묻어나는 답변을 해주었다. 시원시원한 ‘투사’ 스타일인 김상수 수석부위원장과는 아주 좋은 동반자로 보였다. 이들이 이끄는 노동조합 2년이 이들 바램처럼 우리 거제 노동자와 지역주민에게 두루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