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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미래 세대를 위해 새롭게 뽑은 비단실
한·중·일 미래 세대를 위해 새롭게 뽑은 비단실
  • 거제뉴스광장
  • 승인 2016.10.2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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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변영호(오비초 교사), 17회 TEEN 대회를 다녀와서

초대 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초대가 주는 묘한 흥분, 이것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여름이 술로 달아 오른 시커먼 얼굴로 들이밀 때 쯤 초대를 받았다. 초대는 특별한 조건이 있다. 이번 초대의 조건은 ‘수업’이다. 특별한 수업, 우리 나라에서 하는 수업도 아니다. 우리 나라 학생도 아니다. 중국 신천(Shenzhen) OCT초등학교(OCT Primary School) 학교 6학년 36명과 수업을 했다.

“왜 했어요. 수업 어떻게 했어요. 수업 잘 했어요.” 주변 분들이 중국에서 한 수업에 대해서 이것저것 많이 묻는다. 물음에 주섬주섬 답을 달아 보았다. 

초대한 곳은 TEEN(Korea/Japan/China Tripartite Environmental Education Network)라 모임이다. TEEN란 쉽게 말하면 각 나라 환경부 산하에 있는 환경교육학자들 사이의 학문적 교류와 한·중·일 3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는 연구 집단이다.  올해로 17번째 연례 모임이 9월 중국 신천에서 있었다. 

TEEN회의 운영 모습.

TEEN에서는 ‘한·중·일 전통문화 속의 환경지혜’라는 주제로 환경적 가치를 탐구하고 이해하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해 왔다. 자료를 보니 2015년에 개발 사업이 마무리 되었다. 작년부터 개발된 자료를 학교 현장에 적용하여 평가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작년에 일본에서 ‘온돌에 대한 수업 시연’ 수업을 했다. 올해는 두 번째로 의복에 대한 수업시연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 수업을 요청한 것이다.

쉽게 생각했는데,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수업이 아니다. 누군가의 연구 성과물이다. 시연하는 모습을 개발자인 한·중·일 학자 그룹들과 정부 기관 관료들이 보고 평가한다. 수업에 대한 평가가 연구 성과물에 대한 평가일 수 있어 당황했다. 더군다나 개발된 자료는 수업에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다. 프로그램 구성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준들이다.

학생들과 수업 위해서 수업 구조를 만들어야 했다. 구조에 맞게 프로그램을 결합하고 생명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 수업 내용은 한·중·일 의복의 공통 분모인 ‘비단과 염색’으로 잡았다. 아이들이 명주실을 뽑고 염색이라는 과정을 교실 수업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수업을 구성했다.

TEEN에서 개발한 자료
수업지도안 일부

수업은 교감이다. 교감은 아이들과의 말과 감정을 나누면서 나온다. 한국어를 중국어로 통역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교감이 국수 가락처럼 뚝뚝 끊어질 수밖에 없다. 교감을 나누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 필요했다. 교감할 수 있는 활동 중심으로 수업, 수업 중간 중간 연결은 우리반 아이들의 말과 몸짓을 보여주면서 수업을 연결했다. 단순 체험이 아니라 의미있는 경험이 될 수 있고,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토론으로 수업을 마무리하는 구조로 수업을 만들고 준비했다.

OCT Primary School는 아파트 숲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 아파트는 평당 6000만원하는 곳입니다.” 입이 쩍 벌어졌다. 신천은 홍콩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신천은 중국 자본주의 중심부이고 수업하는 학교는 그 중심부의 중심부에 있는 학교다. 

수업의 첫 시작은 고요한 침묵을 웃음으로 바꾸기 위학 박수치기 놀이다. 긴장된 얼굴을 호기심어린 얼굴로 바꾸기 위해서 ‘반짝 반짝 작은 별, 중국어로는 이샨이샨 니얀찡징, 일본어로는 히라히라 히까루’라는 동요를 한·중·일 언어로 함께 불렀다.

‘명주실 뽑기 체험 활동과 염색’활동을 통해서 학생들이 ‘위대한 호기심’을 발견하는 것이 목표였다. '왜 누에를 징그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먹이를 주면서 상전으로 모셨을까? 조상들은 어떻게 누에 고치에서 실을 뽑고 옷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라는 호기심을 품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을 간단하게 염색하는 활동을 했다. 특별한 염색 기법을 가르쳐 주기 보다는 ‘자연 속에서 색을 찾으려 했던 조상들의 위대한 관찰력’을 접해 보는데 목적이 있다. 명주실이 노란 치자 염색으로, 붉은 소목 염색으로, 숯 염색으로 검게, 흙빛 황토색으로 변화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달아 올랐다.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고 있는 모습
염색하는 중국 학생들

2가지 핵심 활동을 하고 아이들과 ‘전통 옷과 소재들의 미래와 전통 가치’에 대한 토론을  했다. 당당하게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중국의 미래 모습이 상상되었다.

아이들에게 “전통은 **이다. 왜냐하면 ***이기 때문이다”라는 구조로 핵심가치를 정리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전통 옷은 속옷이다. 왜냐하면 늘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소중하게 있기 때문이다. 전통 옷은 핸드폰이다. 늘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창조적 표현을 많이 했다. 중국 학생들은 ‘전통 옷은 지혜다. 전통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전통은 조상들이 지닌 정신이다’라는 개념들을 말했다. 솔직한 아이들 언어로 표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마 통역이 가진 한계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전통은 우리가 오늘 뽑은 명주실 같은 것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잘 보이지 않지만 매우 강합니다. 우리의 현재 모습 뒤에서 과거로 연결된 보이지 않는 선입니다. 또한 오늘 우리들처럼 누군가 열심히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서 뽑아야 내고 지켜야 할 가치입니다.” 이 말을 하면서 수업을 마무리 지었다.

한중일 모든 관계자 분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일본에서 40년간 생태 해설을 해 오신 선생님이 "당신은 최고의 생태 해설가입니다. 기회가 있으면 한 번 초청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수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마침표를 찍는 말이다. 수업은 기획한 사람, 계획하고 시연한 사람, 평가한 사람, 수업에 참여한 학교와 아이들 모두에게 성공적인 수업으로 기억될 것 같다.

한·중·일은 닮았다.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기 위해서 한·중·일 조상은 비슷한 일을 했다. 고치를 따뜻한 물에 넣고 기다렸고 첫 번째 풀리는 날줄을 조심스럽게 찾았다. 천천히 욕심 내시 않고 고치에서 풀리는 실만큼 실타래에 실을 감았다. 그렇게 기다림과 인내로 만든 옷이 한국의 한복, 일본의 기모노, 중국의 치타오로 탄생했다. 같은 비단 소재로 다른 옷을 만들 수 있는 다양성,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른 한·중·일 오늘날 모습과 닮았다.

한·중·일 관계는 명주실과 닮았다. 멀리서 보면 안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명주실처럼 가늘고 강한 투명한 실들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 사드 문제가 한·중·일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로가 다른 것 같지만 하나의 명주실을 타고 올라가면 한 곳에서 시작된 한 올의 목줄과 만난다.

한·중·일 미래세대를 위한 특별한 수업이다. 미래 세대들이 전통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미래를 위한 새로운 공통 비단실을 뽑는 과정이었다. 이번 수업은 미래 세대를 위한 새로운 비단실을 뽑는 과정이다. 이번 수업이 한·중·일이 얼마나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잠시 우리가 잊었던 역사 속의 명주실을 서로가 확인한 특별한 수업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한·중·일 미래 세대들이 평화와 공존을 위한 새로운 비단실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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