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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둘 다 죽는다
[칼럼] 둘 다 죽는다
  • 거제뉴스광장
  • 승인 2017.08.04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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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칼럼위원, 거제대 교수)
▲ 이헌(거제대 교수)

영화 얘기다. 영화의 일부분은 이렇다. 원수에게 잡힌 주인공과 동료는 큰 창고 안에 묶여있다. 잠시 후,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상황으로 살 길이 제시되었다. 천장에서 내린 줄에 긴 막대기 중앙이 묶여있다. 막대기 양쪽 끝에 주인공과 동료의 목을 묶어 매단다. 천장에 달린 막대기 양 끝에 목줄로 감긴 그들이 사는 방법은, 번갈아 한차례씩 땅에 내려 와 호흡한 후, 반대편에 올라간 동료를 위해 자신의 몸을 허공으로 밀려 올려야한다. 그렇게 상대를 위해 적당한 시점에 자신의 몸을 올리지 않으면 막대 반대편 끝에 매달린 이는 질식하게 된다.

처음에 이들은 상황을 매우 만만히 생각하며 서로를 고려하는 시소질을 한다. 참으로 쉬운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땅에 내려 선 시간이 길어져야 했고, 반대로 허공에 달린 동료는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 고통을 바라보곤 마지못해 발을 튕겨 차서 자신의 몸을 허공으로 올린다. 한편 반대편에 매달려 있던 이는 땅으로 내려와서 심호흡을 하며, 좀 전의 동료를 원망한다. 동료가 조금만 더 빨리 올라와 주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호흡할 기회인 땅위에 내려섰을 땐, 좀 전의 시간보다 길게 호흡해야 하고 차츰 이들의 고통은 가중되어 간다. 둘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자신이 당한 질식의 고통을 느껴보라는 심정뿐이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서 둘은 급속히 서로를 원망하며 상대를 괴롭히고 자신의 호흡을 안정시키기에 급급해진다. 이윽고 상태는 매우 나쁘게 되어 처음의 만만하고 서로 협조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필사의 몸부림만 친다.

영화에서는 우연한 계기로 이들이 풀려나지만, 현실에서 그 어떤 개입도 없는 상황이라면 둘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둘 다 죽는 것뿐이다. 결국 천장에 달린 막대기는 수평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수평 즉 막대기가 평형이 잡힌다면 두 사람은 허공에 달려 질식하게 된다. 이때, 서로의 처지를 생각하고 상대를 위해 내가 조금 적게 호흡한다고 한 생각은 어디로 갔을까?

지역의 현안들을 지켜보면 간간히 이 영화의 장면이 상기되고, 그럴 때마다 초반에 갖는 각자의 호기로움이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걸 본다. 이쯤이면 지역사회는 갈등으로 몸살하고 현안은 죽도 밥도 아닌 상황에 빠져들며 시간만 흐른다. 항상 시간은 세워진 계획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갈등 속에서도 절차가 진행되는 까닭이다.

고교평준화, 해양플랜트국가산단, 저도, KTX역사, 지심도, 상문아주간 한전복선화, 남부면 골프장 등등. 이들은 이런저런 상황에서 계획이 막 수립되거나 상당히 진행된 것들이다. 모두 중요한 사업이다. 면밀하고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고 협의가 요구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좀 복잡하다. 특히, 지난 5월의 대선을 전후하여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의견들로 비롯된 갈등은 무얼 의미할까? 이를 두고 정치적인 판단이란 생각을 하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물론 사안이 중요하니 고민하는 시점은 어느 때라도 허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표면에 선 이들이 자칭 타칭 정치권 입성을 노리니 딱하기가 그지없다. 괜한 오해를 사며 시민으로부터 지겨운 사안으로 변질하는 게 애처롭다.

그러는 중 가끔 신선하고 기대를 불러 줄 이의 의견이 나온다. 그는 존중받을 만한 용기를 지니고 평소의 소신을 보이니, 그나마 숨고르기가 진행된다고 할 것이다. 이런 태도와 견해가 더 많이 필요하다.

다시 영화 얘기를 상기하며, 자칫 둘 다 죽는 문제를 우린 어떤 자세와 태도로 풀어야 할지 고민하자. 맞춰야할 호흡이라면 정치적 입장을 버리고, 버려야할 일이라면 정치를 제외하고 던져야한다. 이것이 시민을 위한 행위다. 특정한 입장을 지닌 주장이 공격의 기회를 제공하니, 지역현안들만이라도 정치적인 오해를 받지 않았으면 한다.

신선한 주장을 취하고 정치적 입장을 버리려면 공개된 자리에서 갖는 협의과정이 중요하다. 갈등은 토의가 필요하고, 토의는 냉정하고 이성적 자리일 때 결과를 가져다준다. 현안에 대한 혜안이 생기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가 시소에서 질식하는 걸 방지하고 시민이 논리적인 판단을 갖추면, 이것이 협치다. 우리 지역도 터놓고 찬반을 토론하자. 함께 풀어 질식 상황을 피하자.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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