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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이라도 달래는 위령공원 세워야"
"넋이라도 달래는 위령공원 세워야"
  • 노재하 기자
  • 승인 2014.11.11 0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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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학 민간인희생자유족회 위원장

"맑은 술 한 잔 따르며, 넋이라도 달랠 수 있는 위령공원 반드시 세워야"

▲ 민간인희생자 거제유족회 이병학 회장

“지난 60여 년 동안 ‘빨갱이 자식’이라는 이웃의 온갖 냉대와 질시 속에 들불처럼 살아온 우리 유족들은 해마다 그 숫자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더 이상 늦출 수 없습니다. 맑은 술 한 잔 따르며, 넋이라도 달랠 수 있게 위령공원을 반드시 세워야......”

2009년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위)는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 119명을 포함한 800여 명 이상의 거제 민간인들이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 7월~9월 사이에 군과 경찰의 지휘, 명령에 의해 좌익 세력에게 협조할 것이라는 의심만으로 지심도에서 수장당하는 참혹한 일이 벌어 진 사실을 확인했다. 이른바 거제지역 보도연맹 민간인 희생사건이다.

이병학(66세) 민간인희생자거제유족회 위령공원 건립추진위원장은 당시 돌이 채 지나지 않아 간난아이 때 아버지을 잃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주검을 찾아 지심도 인근의 바닷가를 1년 내내 뒤졌지만 결국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한다. 더욱이 7월 중순 쯤 거제경찰서에서 국민보도연맹원을 소집할 때 연행되어 정확히 사망한 때를 알 수 없는 가족들은 7월 26일 경 지심도에서 수장됐다고 하여 같은 날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홀어머니와 함께 그동안 얼마나 말 못 할 고통과 아픔을 감당했으랴. 거제뉴스광장 사무실을 찾은 이병학 위원장은 그 한맺힌 세월의 실마리를 풀어놓았다.

- 어린 시절 참으로 힘드셨을 것인데 어찌 지내오셨습니까?
감당하기 힘든 시절이었어. 이 악물고 거제중 그리고 해성고를 다니며 오로지 운동과 공부에만 매달렸지. 공무원, 국영기업에 시험을 보았지만 매번 면접에서 떨어졌어. 신원조회 과정에서 떨어졌다는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고 외국이라도 가고 싶어 배를 탔지. 거기서도 일반선원 수첩이 나오지 않아 상선 같은 큰 배조차 탈수가 없었어. 그러다 선주회사에 발탁되어 부산에서 안정된 회사생활을 누리는 가 했지만, 연좌제가 완전히 폐지될 때까지 도경에서 나왔다는 형사가 회사까지 정기적으로 찾아 왔어. 참으로 쉽지 않은 시절이었지.

- 유족회에 어떻게 참여하시게 되었는지요?
50대 초에 고향인 능포에 내려왔어. 아버님 관련해서는 내 입으로 한 마디도 꺼내 놓질 못했지. 2000년인가 거제박물관에서 열린 거제지역 희생사건 유족 증언 모임에 참석했다가 너무나 많이 울었어. 아버님께 죄송하고, 그토록 고생하신 어머님을 한 동안 쳐다볼 수가 없을 지경이 됐지....(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시는 바람에 말씀을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이야기를 계속했다)
무엇보다도 4.19 혁명 직후 유족회를 결성했다가 5.16군사 쿠데타로 반공법인가해서 고초를 겪기도 했을 텐데, 2001년에 유족회 재결성을 위해 애쓰시는 서철안 당시 초대회장님을 만나 커다란 감동을 받았지. 당시 내가 제일 젊은 축에 속하니까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열심히 참여했지. 지금도 매번 위령제 때마다 노구를 이끌고 참석하고 계신 서철안 고문님을 뵐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들어.

- 지난 10월 7일 민간인희생사건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재판에서 이겼는데....
1차사건(47년~50년 6월 사이에 발생한 민간인희생사건)이 대법원까지 가서 이겨 참으로 다행이야. 물론 60년 동안 '빨갱이 자식'이라고 불리며 온갖 천대를 받으며 살아온 한 맺힌 억울함이 몇 푼 돈으로 풀어지기나 하겠냐. 그렇지만 뒤늦게나마 명예회복이 돼 기쁘고 반갑지. 우리 거제도에서 1000명 이상이 희생됐는데, 그나마 재판을 할 수 있는 희생자 가족은 '진화위' 조사를 통해 결정문을 받은 150명 남짓이야. 그 중에서 이긴다는 확증이 없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연락이 안 되어 이번 재판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이 50명이 넘어. 이제 시효가 지나 재판도 못해. 이런 억울한 일이 또 어딨어?암튼 이런 유족들을 위해서라도 진실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돼.

 - 위령공원건립추진위원장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
위령공원, 위령비 건립 그리고 유해발굴 이런 거 정부와 거제시가 해줘야 돼. 부지까지 제공한다고 하면서도 자꾸 미루기만 해. 이래선 안 돼. 작년 말 ‘민간인희생사건 위령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 만들기까지 시청하고 시의원들한테 매달리고 부탁하고.... 이제 조례까지 만들었으니 시와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해. 이름 석 자라도 새긴 위령비라도 제대로 세워, 맑은 술 한 잔 따르며 넋이라도 달랠 수 있는 위령공원 반드시 세워야 해. 그래서 가해자든 피해자든 이념대결로 인한 상처를 하루 빨리 정리하고 화해하고 상생하는 길로 나가야해. 이게 내 고향과 부모님을 위해 늦었지만 내가 감당해야 일이라 여길 뿐이야. 그러기 위해 언론에서도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주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도와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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