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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노동자 스스로 문제해결 주체가 되길"
"하청노동자 스스로 문제해결 주체가 되길"
  • 노재하 기자
  • 승인 2015.01.13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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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2015 희망을 말하다 ➀ 강병재(하청노동자조직위 의장)

2015년 을미년 청양의 해, 거제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은 어떤 소망을 안고 있을까? 노동자, 농민, 어민, 자영업자 등 각 계층별 10명의 시민들을 만나 이들이 말하는 새해 희망을 전한다. 첫 번째 순서는 강병재(52, 하청노동자조직위원회 의장) 대우조선 하청업체 해고노동자다.(편집자)

2011년 3월, ‘위장페업, 해고살인, 차라리 죽여라’라고 적힌 플래카드와 밧줄, 확성기를 둘러메고 대우조선 남문 옆 15만 4천 볼트가 흐르는 송전선 철탑에 올랐던 강병재(52) 하청기업 해고노동자. 철탑농성 88일 만에 그는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대우조선노동조합과 회사측(대우조선협력사협의회)이 ‘대우조선 사내하청 동일업계 복직 확약서’을 작성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작업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현장 복귀의 희망을 내려놓지 않고 대우조선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차별철폐와 처우개선을 위해 ‘하청노동자 조직위원회(하노위)’ 의장을 맡고 있다.

어렵게 마련한 ‘하노위 사랑방'…14일, 개소식 연다.

지난 9일 아주터널 입구 푸르지오아파트 앞 도로변. 화물연대 깃발이 꽂혀있는 컨테이너 옆에 하노위 문패가 달려 있는 또 하나의 컨테이너가 놓여 있다. 오는 14일 개소식이 열린다는 사무실에 미리 덥석 들어섰다. 컨테이너 안은 깨끗했지만 냉기가 가득했다.

컵라면으로 저녁을 대신하는 강 의장에게 요즘은 대우조선 문 앞에서 목요집회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지난 연말 어렵게 사무실을 마련하고,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30분부터 수요 영화 상영을 통해 회원 친목과 교류를 목적으로 사랑방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한다. “하노위 조직의 내실을 탄탄히 하고 봄부터 비정규직 조직화와 하노위 활동을 알리기 위한 목요집회를 이어 갈 계획”이라고 했다.

정규직·비정규직의 비율은 1대2

강 의장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 직원 수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포함해 4만 명이다. 2013년 해양플랜트 일거리가 많을 때는 4만 5000명에 이르기도 했다. 대우조선내 직영사원은 사무직과 설계직군을 포함해 1만 4000~1만 5000명 정도. 나머지 2만 5000~3만명은 다양한 형태의 사내 하청노동자다. 조선소 전체인력의 절반이 훨씬 넘는 70%정도가 사내하청노동자로 이뤄져 있다.

이들 중 이른바 1차 사내하청(하청업체 직고용, 본공, 상용직)으로 정규직의 일부 복지 혜택을 받는 이들은 6000~8000명 정도다. 하지만 본공을 제외한 2~3차 사내하청 기간제 노동자, 직시급제, 물량팀 등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이 절반이 넘고 임금 수준도 정규직의 50~60%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 의장은 밝혔다.

물량팀의 경우 선박 건조 업무 중 일부 고숙련 업무를 중심으로 초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활용됐지만 최근에는 물량팀 방식의 사내하청 노동활용이 단기·일회성 하청에서 상시·고정적 하청양상으로 거의 전 직종으로 확산되고 있다.

강 의장은 특히 물량팀의 경우 비공식적인 고용관계가 대부분이어서 최소한의 노동기본권이나 4대보험 조차 적용되지 않은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연장이나 특근수당, 휴일휴가 등에서도 차별이 있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의 분노와 좌절감, 남의 일 아니다”

강 의장은 대우조선해양 생산량의 70%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공정에 의해 제작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과 복지수준은 현저하게 낮고 상시해고와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더욱이 사내하청의 하도급 구조와 불안정한 고용형태에 따라 어렵고 위험한 작업이 사내하청으로 전가되면서 산재사고가 대부분 사내하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 의장은 “결국 간접고용의 증가로 인해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이 위험작업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과 고용불안에 대한 스트레스로 생명과 건강을 앗아가고 있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는 내 이웃의 아픔이자, 내 자식의 미래일 수 있다”며 “결코 남의 일이 될 수 없기에 스스로 눈 감고 외면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하노위는 하청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스스로 나선 자주적 조직”

‘사내하청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와 부당한 차별에 저항해 스스로 노동자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 모아져 2007년 하노위가 결성된다. 그로부터 대우조선 비정규직 노동조합 결성을 목표로 <하청노동자> 소식지도 발행하고 꾸준히 활동했다. 강 의장이 노동조합 결성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원청의 개입에 의해 사업장은 폐업되고 해고된 시점도 이 즈음이다.

형식적인 도급 계약과 상관없이 실제 사용 사업주로서의 지휘·명령 권한을 보유한 대우조선해양을 상대로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목요집회와 1위 시위도 거듭하며, 부당노동행위라며 원청을 상대로 법적 소송까지 제기하기도 했다. 88일의 처절했던 철탑농성에도, 복직합의에도 불구하고 사업장은 멀기만 하다.

그는 쓰러질 수도, 멈출 수도 없단다. “하청노동자 스스로 문제해결의 주체가 돼야한다”며 그 해답도 현장에 있기에 대우조선해양을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여전히 하노위 의장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보호와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실태조사, 상담,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작은 희망도 놓지 않겠다

두 시간 가량 이어진 인터뷰 동안 치열함이 묻어나는 어조와 논리로 막힘없이 쏟아냈던 그가 “2015년 새해, 희망이 뭐냐”에 대해 묻자 잠시 담배를 찾았다.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삶이 어떤 것인가?” 오히려 질문을 던지며 “절망과 서러움이 북받쳐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내하청 비정규직 문제만큼은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말조차 꺼내기 쉽지 않다고 했다.

강 의장은 원청의 노조설립 방해도 문제지만 사내하청업체 자체가 대부분 원청과 1년 단위의 계약이고, 한 업체 내의 노동자도 계약기간이 다른 상황이라고 했다.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조를 만드는 것, 노조활동을 한다는 것은 물론이고 사내하청업체의 노조 설립이라는 희망조차 찾기가 버거운 현실이라고 했다.

그는 하노위의 2015년 활동에 대해 “하노위 사무실을 열고나서, 노동 상담을 위해 사무실을 찾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늘고 있다”며 “올 겨울 동안 수요영화상영, 사랑방 소모임을 통해 회원확대와 회원 간 교류를 확장해 사내하청노동자의 조직화와 내실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개별 사업장에서의 노동자 조직화는 어려운 상황에서 대기업, 지역별 노동자 조직화에 몰두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비정규직 노동운동단체와 대우조선노동조합의 실질적인 협력과 연대에 힘쓰겠다고 했다.

그라고 개인적 바람이 없을까? “고3 딸아이를 둔 가장으로서 책임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도 대우조선 사내하청으로의 현장 복직이 새해 가장 큰 소망이자 바람이다”라는 그의 말 속에 세상 모든 아버지들이 가지는 삶의 무게가 함께 묻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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