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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에서 지상까지 70미터
굴뚝에서 지상까지 70미터
  • 장남수
  • 승인 2015.01.18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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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볼리'를 기쁘게 탈 수 있는 날, 그날을 기다리며


장남수(칼럼위원)
성공회대 노동사연구소부설 노동자역사작업장 연구원
<빼앗긴 일터>저자

티볼리는 아름다운 분수를 내뿜는 정원으로 꾸며진 로마의 유명한 휴양지라고 한다. 요즘 티볼리가 유명해졌다. ‘티볼리’라는 이름의 신차를 출시한다는 쌍용자동차의 해고 노동자들 때문이다.

김정욱, 이창근 두 노동자가 평택 쌍용자동차 도장공장의 70미터 굴뚝에 오른 지 35일째인 지난 1월16일, 중후반의 여자들 10명이 농성장을 찾았다.

30여 년 전 국가권력의 민주노조 말살음모에 의해 해고자가 된 이후 지금까지도 가해자인 국가를 ‘피고’로 싸우고 있는 원풍노조 사람들이다. 막내뻘이 오십대가 된 아줌마들은 ‘지상에 설 자리 하나 없어’ 굴뚝으로 내몰린 후배 노동자들의 일이 남의 일이 될 수가 없었다.

비닐로 바람을 가린 굴뚝농성 지원 천막 안에는 드럼통을 개조한 난로에 장작이 타고 있었다. 지역의 농민단체에서 장작을 보내주는 등 이곳 저곳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지펴내는 불씨였다. 부산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도 와 있었다. 우리들의 방문에 천막을 지키던 노동자들은 모두 뒤로 물러나 난로 주변을 고스란히 양보했다.

천막 앞에 서니 멀리 두 개의 굴뚝이 보였고 쉼 없이 뭉클뭉클 연기가 솟아나고 있었다. 저 유해한 연기에서라도 온기를 느낄까. 스마트폰 영상통화를 연결하여 우리는 목소리를 합쳤다. 힘내라! 힘내라! 힘내라!

점 하나 떠있는 듯한 허공에서 두 사람이 일어섰고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서로 멀리 마주보고 서서 있는 힘껏 두 팔을 흔들었다. 힘내!

날씨는 궂어 진눈깨비 같은 눈이 내렸다. 얼굴에 한잎 두잎 와 닿는 잔 물기에도 시려운데 70미터의 저 허공이 얼마나 춥고 두려울지 먹먹해졌다.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등인 김정욱, 이창근씨의 자녀들도 이곳에 서서 굴뚝을 바라보기만 하다 갔다고 했다.

그런데 굴뚝 중간에 동그란 보따리 하나가 오르지 못하고 줄타기를 하며 흔들리고 있었다. 땅에서 올려 보내는 배식을 3일째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힌드라 회장이 왔고 트위트를 통해 이들과 문자를 주고 받기도 했지만 그는 "이유일 사장과 잘 협의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하지만 아무런 조치가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협의가 시작될 때까지 식사를 받지 않겠다며 약간의 비상식량, 마른라면 등을 깨서 먹고 버티는 중이라는 것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5년 전에도 정리해고 철폐를 주장하며 그 굴뚝에 올랐다. 그리고 노조는 전면파업에 돌입했고 파업은 77일간 계속되었다. 그러나 회사는 핸드폰 문자로 정리해고를 통보했고 경찰은 헬기에서 최루액을 살포했다. MBC는 ‘수면가스살포’계획을 폭로했다.

“물이 없어 화장실은 똥오줌으로 가득했고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찌르고 정신까지 혼미하게 만들 지경이었다. 돼지우리 속에 들어 온 기분이었다. 진압의 두려움보다 더한 절망감을 느꼈다.” (이창근, <굴뚝신문>2015년 1월7일, 재인용)

그때 그런 상태의 파업 노동자들에게 권총형 전기 충격기를 쏘고 곤봉으로 두들겨 패던 장면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처럼 남아있다.

2009년 쌍용차노동자들의 ‘정리해고’ 조치 이후 명예퇴직을 했거나 해고를 당했던 노동자 중 스물여섯명의 젊은 생명이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400억원이 훨씬 넘는 손배소송이 해고자들의 어깨를 짓이겨 누르고 있고 지난 연말 대법원은 이들의 한 가닥 기대마저 잔인하게 잘라버렸다.

결국 엄동설한에 두 명의 노동자들은 다시 굴뚝 위로 올라갔고 한 달도 훌쩍 넘게 연기만 올라가는 저곳에 서 있다. 회사는 굴뚝 농성 하루에 백만원씩 손해배상도 물린다고 한다.

다행인 것은 그동안 훨씬 강해진 노동 강도에도 말 한마디 못하고 일하던 공장안의 노동자들이 해고자들이 들어와 함께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조금씩 말한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그게 정상 아닌가, “비정상의 정상화”

이유일쌍용차사장은 “X100(티볼리의 프로젝트명)이 연간 12만대 이상 생산되면 해고노동자 복직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거꾸로 된 계산법이라는 비판이 크다. ‘티볼리’ 잘 팔려야 해고자 복직이 아니라, 해고자 복직해야 티볼리가 성공한다는 것이다.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농성장의 노동자들은 티볼리가 감동이 되기를,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며 대한민국을 누비기를, 진정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해고자의 심정을 누구 못지않게 잘 아는 필자도 장담하건데 그들이 공장안으로 들어간다면 신명을 다 바쳐 아름답고 튼튼한 티볼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원래 좋은 일을 앞두고 동티나지 않으려면 집안단속을 해야 하고 상처를 보듬어야 한다. 스물여섯명의 영정사진이 길거리를 헤매고 있는데, 그 한을 풀지 않고서야 양식 있는 사람들이 어찌 그 차를 맘 편히 탈 수 있겠는가.

진정 쌍용자동차의 신차 ‘티볼리’가 한국의 국민들에게 사랑받으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자동차제작 기술자인 김정욱, 이창근 등 해고노동자들을 땅으로 내려오게 하고 공장 기계 앞으로 돌아가게 해야 할 것이다.

세계적인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굴뚝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그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싸우고 있다” 고 말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그들의 싸움에 연대하고, 그리하여 속히 굴뚝에서 내려와 공장에서 노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날 이효리의 춤에 맞춰 우리도 몸을 흔들며 춤 출 수 있기를 간곡히 바란다.

▲ 70년대 노동운동의 상징이었던 원풍모방 당시 해고자들이 쌍용차 굴뚝농성장을 찾았다.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필자인 장남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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