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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리 길을 가자면
천 리 길을 가자면
  • 거제뉴스광장1
  • 승인 2015.02.0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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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

천 리 길을 가는 자는 반드시 먼저 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를 확인한 다음에야 발걸음을 뗄 수가 있다. 그런데도 막상 문을 나서 길을 가다 보면 도무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게 되므로 반드시 길을 아는 사람에게 묻기 마련이다. 길을 아는 사람이 바른길을 알려주고 또 가서는 안 되는 길을 자세히 가리키면서,

“저쪽 잘못된 길로 가면 반드시 가시밭길로 들어서게 되고, 이쪽 바른길로 가면 반드시 목적지에 이를 것이다.”

라고 정성스럽게 말해 줄 것이니, 그 사람의 말이야말로 성심을 다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의심이 많은 자는 좀체 믿지를 못해 머뭇거리며 다시 딴 사람에게 묻고 또다시 딴 사람에게 묻는다. 그러면 길을 가는 자가 다 묻기도 전에 그 옆에 있던 친절한 사람이 그 길의 굽이굽이를 낱낱이 들어 일러준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혹 잘못 알았을까 염려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기까지 한다. 이 정도면 충분히 믿고 뒤처질세라 길을 달려갈 법도 하다. 그러나 길을 가는 사람은 더욱 의심스러워하며,

“남들이 모두 옳게 여긴다 해서 내가 감히 따를 수 없고, 남들이 모두 그르게 여긴 다 해서 내가 또 그것이 과연 그른 줄도 모르겠으니, 내 직접 경험해 보리라.”

한다. 그러다 결국 함정에 빠져 구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설령 마지막에 가서 자신이 길을 잃고 헤맨다는 것을 깨닫고 되돌아온다손 치더라도 이때는 이미 시간을 허비하고 심력을 소모해 버린 터라 돌이킬 여유가 없다. 남들이 분명하게 일러준 말에 따라 힘써 행하여 쉽게 일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원문]

今夫適千里者, 必先辨其徑路之所在, 然後有以爲擧足之地. 當其出門而行, 固倀倀何之, 必詢於識塗之人. 迨其人告以正大之路, 又細指其邪徑之不可由者, 懇懇然以爲由其邪, 必入於荊棘, 由其正, 必得其歸, 人之爲言, 可謂盡心矣. 而多疑者遲遲不敢信也, 復問之一人, 又復問之一人, 至其傍人之以誠居心者, 幷不俟問而盡擧其塗之曲折, 陳之我前, 惟己之或誤, 至於人人皆同一言, 此亦可以篤信而奔趨恐後矣. 彼愈生疑, 謂吾不敢從人之所共是者, 其所共非者, 吾又不知其果非也, 吾須歷試之, 卒致入於坎臼而莫救也. 卽使終覺其迷而反之, 亦虛廢時歲, 勞耗心力, 有日不暇給之憂. 何如卽人之所明白曉示而力行之, 爲收功之易耶?

-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천 리 길을 가자면[適千里說]」, 『완당집(阮堂集)』제1권 「설(說)」

[해설]

오늘날은 길을 나서기가 참 편한 세상이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설정해 두기만 하면 초행길도 헤매지 않고 갈 수 있다. 혹 잘못된 길로 접어들기라도 하면, 바로 경로를 재탐색해서 빠른 길로 다시 인도해 준다. 길을 잃고 헤맬 근심이 전혀 없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도로 표지판도 없었고 지도도 귀했다. 가는 곳이 몇 리 노정이며 양식은 얼마나 필요한지, 거쳐 가는 정자며 나루, 역참의 거리와 방향을 묻고 나서 길을 나서야 했다. 그렇게 해도 정작 길을 가다 보면 엉뚱한 길로 접어들기 십상이다. 그럴 때에는 행인이나 마을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노정을 잡아나가야 했다. 물론 그들이 꼭 바른길을 가리켜 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완당이 말하는 천 리 길은 단순히 먼 노정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생의 기나긴 여정’이란 말로 바꾸어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인생의 여정에는 갈림길이 수도 없이 나타난다. 그때마다 이 길로 가야 할지 저 길로 가야 할지 신중히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일단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여간해서는 돌이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완당은 그 갈림길에서 헤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질문을 던지면서 글을 맺고 있다. 하지만 해답은 이미 행간에 암시되어 있다. 길을 모르면 제멋대로 가지 말고 남들이 일러 준 것을 믿고 그 길로 가라는 것이다.

완당이 말하는 ‘남들’은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먼저 가봤던 사람일 것이다. 스승일 수도 있고 벗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완당이 말하는 ‘남들’은 선현(先賢)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다. 비록 선현이 우리와 동시대에 살면서 직접 길을 가리켜 주지는 못하지만, 인생의 여정에 길잡이가 될 만한 지혜와 진리를 우리에게 남겨 놓았다. 그것이 고전이다.

우리는 고전을 통해 내가 가보지 못 했던 길도 가보고, 내가 겪어 보지 못 했던 일들을 겪어 보기도 하며 진리와 지혜를 배운다. 고전은 미로에서 헤매는 우리에게 바른길을 제시한다. 그래서 고전은 인생의 여정을 이끌어주는 ‘내비게이션’에 비유할 수 있다. 고전 속에서 길을 찾으면 망양지탄(亡羊之歎)도 없을 것이다.                  

“헤매면서도 남에게 묻지 않는 것을 고집스럽다고 하고, 자신을 뽐내며 남에게 굽히지 않는 것을 쩨쩨하다고 하며, 잘 이끌어 주는데도 따르지 않는 것을 꽉 막혔다고 한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스스로 진보할 수 없는 경우로 현명한 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迷而不詢謂之頑, 矜而不屈謂之吝, 善導而不遵謂之窒. 三者皆無以自進, 而明者不爲.]”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말이다. 완당과 성호가 허튼 말로 우리를 속여 잘못된 길로 인도하기야 하겠는가?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고전을 오늘의 길을 찾는 내비게이션으로 활용해 보는 것도 좋겠다.

 

글쓴이 : 김낙철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주요 번역서
- 인조/ 영조/ 고종대 『승정원일기』
- 정조대 『일성록』
- 『명재유고』, 『서계집』, 『성호집』 등의 번역에 참여

 

- 이 글은 '한국고전번역원'의 허가를 얻어 <거제뉴스광장>에 게재하는 것입니다.

-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www.itkc.or.kr)  ‘고전산문’ 코너에서 더 많은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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