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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첫번째]조선산업과 거제 지역경제
[기고, 첫번째]조선산업과 거제 지역경제
  • 거제뉴스광장1
  • 승인 2015.02.1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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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용, 중소기업청 기획조정관

거제 출신 정부 고위공무원으로서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조선산업정책을 담당하기도 했던 허남용 중소기업청 기획조정관에게 거제 조선산업에 대한 전문가적 견해를 요청했다.

그의 기고는 ①산업발전 이론에 바탕을 둔 우리 조선산업의 현실과 거제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 ②경쟁력 요소가 급변하고 있는 한/중/일 3국의 조선산업 비교 및 거제 조선산업의 발전방향, ③향후 일반선박에서 해양플랜트로의 전환 가능성 및 거제지역의 대응 방향 등 세 차례로 다뤄질 예정이다.

그는 “혹여 거제 조선산업 발전에 조그만 쓴소리도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내 자신이 ‘조선소가 영원한 마음의 고향’인 조선공학도 출신으로서 행정적으로도 여러번 조선산업정책을 담당한 경험이 있어 조심스럽게 펜을 들었다”면서 “첫 기고인 거제지역 조선산업 현실과 관련해서는 최근 상황을 강조하다 보니 다소 비관적인 톤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을 다시금 인식할 때 극복하려는 의지도 강해지는 법이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기고 내용은 정부 정책방향과는 무관하며 조선공학도 출신의 개인 의견임을 사전에 밝혀둔다”고 덧붙였다.(편집자 주)

모든 생명체가 일정한 수명이 있듯이 기업 및 산업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한때 필름카메라 시장을 석권했던 코닥이 디지털시대에서 갑자기 몰락했듯, PC의 애플이 2007년 아이폰 출시와 함께 하루아침에 혁신기업의 아이콘으로 솟아 올랐듯, 그리고 그 애플이 현재에는 스마트폰 시장의 성숙과 함께 예전 같지 못하다는 이야기도 결국은 기업과 산업의 라이프사이클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70년대 최대 호황업종이었던 신발과 섬유가 90년대를 거치면서 국내생산기반이 사라졌고, 최근에는 우리경제의 최대 먹거리중 하나인 석유화학, 반도체, 모바일 등이 산업발전의 정점에 도달했다는 이야기가 심상찮게 들리고 있으니, 어쩌면 기업과 산업의 부침은 자연스런 현상이 아닌가 싶다.

기업 또는 산업의 라이프사이클 문제는 70~80년대의 세계적인 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90년대 초 P. Swann, M. Porter 등을 통해 학문적 이론으로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그 이론적 골격은 기업 또는 산업은 외부적 시장변화와 내부의 조직문제 등으로 인해 「태동→성장→정체→쇠퇴/재생」의 S형 커브로 변화한다는 것인데, 이 이론은 아직도 산업생태계를 분석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조선산업의 경우에도 이러한 S형 이론을 통해 분석 가능할 것이다. 영국이 세계 해상권을 지배하던 19세기부터 보자. 산업혁명과 해외식민지 확충으로 해상패권이 중요하던 시기에 리벳공법을 이용한 강선을 개발함으로써 일거에 세계 최고의 조선강국이 되었고 20세기 중반까지 100년 이상을 최강국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영국의 리벳 강선기술은 20세기 중반 일본의 용접공법, 즉 선체를 여러 블록으로 나눈뒤 용접으로 접합하는 기술에 조선산업 패권을 넘겨주게 된다. 1950년대 후반에 등장한 일본의 용접공법이라는 신기술이 외부적인 시장환경, 즉 70년대초 1차 오일쇼크로 폭증한 세계 유조선 수요를 싹쓸이 하면서 세계 최고의 조선산업국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의 조선산업 패권은 그리 오래가질 못했다. 그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70년대 후반 제2차 오일쇼크 이후 세계 조선시황이 내리막을 걸으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호황기에 이루어진 막대한 인력 및 설비투자가 시황 불황으로 원가절감 압력에 직면하면서 부터다. 원가절감 압력은 기술개발 축소로 연결되었고, 급기야는 설계비용 절감을 위한 표준선형 도입 등으로 종국에는 국제경쟁력을 상실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면, 우리의 경우,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시책과 함께 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현대, 대우, 삼성의 대규모 조선산업 투자로 일본을 따라잡기 시작했는데, 현대의 첫 도크가 완공된 73년 이후 30년만인 지난 2003년 마침내 수주량/건조량/수주잔량 모두에서 일본을 앞지르게 된 것이다. 이후 우리의 조선산업은 설계인력 확대와 기자재 기술개발을 지속해 나갔고, 그 결과 아직까지는 일반선박의 설계 및 생산기술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100년, 일본의 50년을 거쳐, 2000년대 이후 우리가 누려온 20여년간의 조선산업 패권 구도가 최근 들어 다시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기술의 발전속도와 함께 산업의 라이프사이클 속도도 더 빨리 진행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수년전에 우리의 조선산업은 S형 커브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본다.

저선가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의 맹렬한 추격과 업계간 출혈경쟁 등으로 최근 우리의 조선산업은 채산성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데 이는 LNG운반선 등 기술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선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 클락슨의 데이타에 의하면 최근 5년간 우리 조선업계가 과점하고 있는 LNG운반선의 선가가 2009년 3월, 2억4500만불에서 2014년 11월, 2억불로 20% 이상 떨어졌으며, 이는 고스란히 업계의 채산성 악화로 연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자랑하는 LNG운반선도 더 이상 돈이 안된다는 뜻이다. 채산성 악화는 원가절감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다시 기술개발 투자를 약화시켜 신기술 선박건조를 어렵게 만들면서 다시 수주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과거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조선산업도 산업발전의 정점을 지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세계 최대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3조원 이상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거제에 소재한 세계 2, 3위인 삼성중공업의 영업이익은 전년도 보다 80% 급감한 1830억 원에 머물렀고 조만간 발표할 대우조선해양의 영업이익도 그다지 높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조선업계의 어려움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다. 거제는 자동차, 석유화학 등 여러 업종이 고루 분포되어 있는 울산과는 달리 조선산업에 의존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최근 거제시의 ‘2013년도 조사’에 따르면 지역내 제조업 종사자수는 5만7천여 명이라 한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합쳐 5만여 명을 넘고 있는 상황(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자료)을 감안시 제조업 종사자 대부분이 조선업종과 관련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어림잡아 거제시 인구 25만여명의 1/5 이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거제시민 5명중에 1명 정도는 조선업종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와 연계되는 숙박, 음식점 등 서비스 부문까지 고려하면 두 조선업체가 사실상 지역경제를 좌지우지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산업의 어려움이 장기화된다면 거제 지역경제에 어떤 일이 발생할까? 중년을 넘긴 거제시민들 대부분은 아직도 80년대 D조선 합리화조치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D조선의 과다한 차입금 경영에 세계적 조선 불황이 겹쳐져 발생한 구조조정으로 얼마나 많은 직원들이 옷을 벗었던가. 그리고 여파로 거제 지역경제가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었던가. 그러나 최근 조선산업의 어려움은 시황이나 차입금 문제라기 보다는 조선산업 자체의 경쟁력과 관련되어 있어 더욱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산업경쟁력을 다시 높이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경영혁신과 함께 해양플랜트와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도 정착시켜야 하는 만큼 그 해결과정이 어렵고 장기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설계기술력 강화 차원에서 조선산업의 가장 핵심인 기본설계 부문의 수도권 이전을 결정했다. 대우조선해양은 마곡동, 삼성중공업은 성남 판교로.. 고급설계인력 확보를 위한 불가피성은 인정하지만 거제 지역의 많은 핵심인력이 수도권으로 이동한다는 뜻이다. 그렇잖아도 블록조립 등 노동집약 부문 이외의 자체 기술개발 능력이 있는 협력업체가 전무한 거제시 입장에서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S형 산업발전 모델에 의하면 성숙단계의 산업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기업의 탈지역’ 현상이다. 기술력을 보유한 외부기업의 거제 진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두 조선업체 핵심인력의 수도권 이전은 거제 지역내 클러스터링이 주는 긍정적 효과가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현재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일반선박에서의 국제경쟁력 하락 문제를 극복하고 미래 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해양플랜트 부문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설계 및 엔지니어링 기술의 취약과 건조경험 부족으로 혹독한 학습비용을 치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의 경영혁신 노력으로 명실공히 세계적인 해양플랜트 업체로 거듭나기에는 앞으로 상당기간 많은 비용지불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거제 조선산업이 현재의 정체기를 지나 쇠퇴기로 빠지느냐 아니면 재상승의 기회를 잡느냐는 해양플랜트 비즈니스의 빠르고 안정적인 정착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 조선업계의 경영혁신 노력 뿐만 아니라 역내 클러스터링이 역동성을 가질 수 있도록 산/학/연/관 등 관련 경제주체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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