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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식이를 위하여
삼식이를 위하여
  • 거제뉴스광장1
  • 승인 2015.02.2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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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

우록공(友鹿公)은 모친의 뜻을 이어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정성껏 선생을 가르쳤다. 한편으로는 재산을 조금 넉넉히 마련하여 문사들을 널리 불러들였다. 그래서 손님이 항상 많이 찾아왔는데, 부인 이씨와 이렇게 약속하였다.

“손님이 왔는데 찬밥을 대접하는 것은 손님을 공경하는 도리가 아니오.”

부인은 알겠다고 하였다. 하루는 손님 아홉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차례차례 찾아갔다. 부인은 그때마다 몸소 밥을 지어 대접했다. 끝에 가서는 우록공이 밤늦도록 부인이 너무 고생하는 것이 안타까워 이렇게 말했다.

“남은 밥이 있으면 그냥 드리는 것이 어떻소?”

그러자 부인이 말했다.
“손님이 몹시 배가 고프다고 하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야 어찌 약속을 깨뜨리고 손님 공경을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급히 밥을 지었다. 마을 사람들은 ‘하루저녁에 아홉 번 밥을 지은 집’이라고 불렀다.

[원문]

友鹿公能繼母志, 治身以正, 敎先生有誠. 一邊治產稍饒, 廣延文士. 客常多至, 與夫人李氏約曰, 賓至以冷飯待, 非所以敬客. 夫人曰諾. 一日賓九人欲試之, 自夕次次至, 至夜深. 夫人每親自造飯以進, 最末友鹿公悶其夜深而夫人太勞, 曰餘飯可從權以進乎. 夫人曰, 賓甚飢則已, 不然豈可破約, 緩敬客心. 乃急速造飯, 鄕人稱一夕九炊家.
 
- 유인석(柳麟錫, 1842~1915), 「유성원에게 써서 주다[書贈劉聖源]」, 『의암집(毅菴集)』 권38

[해설]

우록(友鹿) 이회장(李晦章)과 부인 전의 이씨(全義李氏)의 일화이다. 이회장은 손님이 올 때마다 새로 지은 따뜻한 밥을 대접하기로 부인에게 약속을 받아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홉 명의 손님이 작당하고서 차례로 그의 집을 찾아갔다. 부인은 손님이 찾아올 때마다 새로 밥을 지었다. 

지금처럼 전기밥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밥 한 번 지으려면 품이 많이 들던 시절이다. 아무리 약속이라지만 이쯤 되면 약속이고 뭐고 집어치웠을 법도 한데, 부인은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끝까지 약속을 지켰다. 분명히 약속한 일인데도 상황이 달라졌다는 핑계로 쉽사리 말을 바꾸곤 하는 지금의 세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회장과 이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한말의 저명한 유학자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1792~1868)이다.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던 이항로의 강직한 성격은 아홉 번 새로 밥을 지으면서까지 약속을 지켰던 이씨 부인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부인도 대단하지만, 남편 이회장이야말로 대단하다. 불청객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한답시고 부인에게 아홉 번이나 밥을 짓게 하였다니, 집에서 하루 세 끼만 챙겨 먹어도 ‘삼식이’ 소리를 듣는 지금으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 친구들 데려갈 테니 저녁 준비해 놔’ 하고 한 마디만 던져 놓고 우르르 집으로 가서 당당히 대접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순순히 불청객을 대접할 주부는 흔치 않으리라. 이뿐만이 아니다. 일 년에 한두 번뿐인 명절이나 생일에도 집에서 손님을 치르는 주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대개는 가까운 식당에서 손님을 대접한다. 손님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집으로 초대받는 일도 드물거니와 어쩌다 남의 집에 가더라도 밥때가 되면 알아서 자리를 피해야 한다. 식사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눈치 없이 죽치고 앉아 있는 손님은 눈총을 받는다. 

손님 대접이 어렵고 불편해진 이유는 우리 생활이 서구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에서는 식사 시간에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큰 실례로 여긴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엄격히 구분하는 문화적 관습 때문이다. 반면 집으로의 식사 초대는 더없는 영광이다. 가족처럼 친밀하게 여긴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서구에서 손님 대접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소중한 식사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렇다면 손님 대접을 꺼리는 우리의 주부들 역시 가족과의 식사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마땅할 텐데, 가장 가까운 가족인 남편의 끼니조차 챙겨주지 않고 ‘삼식이’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창 때는 가정에 무관심하던 남편이 은퇴한 뒤로 집안에 칩거하며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이 싫어서일 수도 있다. 은퇴한 남편의 시중을 드는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끝이 보이지 않아서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은퇴한 뒤에도 손 하나 까딱 않고 집안일을 모조리 아내에게 맡긴 채 당연한 권리인 양 차려 놓은 밥상에 앉는 남편의 태도가 못마땅해서이리라.

서구에서 가족과의 저녁 식사를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음식 준비부터 설거지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하며 속 깊은 대화를 나눈다. 물론 밤늦게 퇴근하는 한국의 남편들로서는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지만 세상의 남편들이여, 이 점만은 명심하기 바란다. 아내가 남편의 노동에 감사하기를 바란다면, 남편도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의 수고를 감사히 여겨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오늘 아내가 차려주는 저녁 식사가 나의 노동에 대한 당연한 대가라고 생각한다면, 당신도 은퇴한 뒤에는 삼식이 취급을 받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저녁 식사가 노동의 대가라면 노동을 그만둔 이상 저녁을 얻어먹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평생 가족을 위해 일한 대가로 끼니 정도는 챙겨줄 수 있지 않느냐고 항변한다면, 그것은 불공정한 계약이다. 당신이 노동에서 해방되었다면, 주부도 가사에서 해방되는 것이 공정하지 않겠는가. 당신이 노동하는 동안 꼬박꼬박 식사를 준비하였다면, 그것으로 주부의 의무는 다한 셈이다. 직장인에게는 은퇴가 있지만, 주부에게는 은퇴가 없다. 이 점을 헤아리지 못하고 매번 당연한 듯 차려 놓은 밥상에 앉는 남편이라면, 삼식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지 않겠는가.

 밥상에 앉는 남편이라면, 삼식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지 않겠는가.

 

글쓴이 : 장유승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
  • 주요저역서
    - 『일일공부』, 민음사, 2014
    - 『동아시아의 문헌교류 - 16~18세기 한중일 서적의 전파와 수용』, 소명출판, 2014(공저)
    -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 글항아리, 2013(단독)
    - 『정조어찰첩』, 성균관대 출판부, 2009(공역)
    - 『소문사설 -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 휴머니스트, 2011(공역)
    - 『승정원일기』(공역), 『월정집』(공역) 등 번역

 

 

 

- 이 글은 '한국고전번역원'의 허가를 얻어 <거제뉴스광장>에 게재하는 것입니다.

-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www.itkc.or.kr)  ‘고전산문’ 코너에서 더 많은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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