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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화의 고전산책] 정월 대보름날, 상원(上元)
[고영화의 고전산책] 정월 대보름날, 상원(上元)
  • 고영화
  • 승인 2015.03.0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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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에 얽힌 민속놀이, 풍습, 음식의 유래를 살펴본다.

우리나라 큰 명절 중에 하나인 정월대보름은 음력 1월15일 대보름날을 말하며 상원(上元), 등절(燈節), 원소절(元宵節)이라 일컫는데 연중 가장 처음 맞는 보름날(上元日)이고 그날 밤을 원소(元宵)라 한다.

중원(中元)은 7월 보름날(백중)을, 하원(下元)은 추수가 끝나는 10월 보름날 이라고 한다. 대보름이라 부르는 까닭은 정월에 보름달의 크기가 1년 중 가장 크기 때문이다. 정월대보름은 설, 추석과 함께 큰 명절 중 하나로 달맞이, 쥐불놀이, 지신밟기 등 여러 가지 재미있는 민속놀이를 하였다.

이날의 민속놀이로는 연 날리기, 바람개비놀이, 봉죽놀이, 밧줄 당기기, 놋다리놀이, 다리밟기, 수레싸움놀이 등이 있었다. 초겨울부터 시작된 연날리기는 정월 대보름 때에 이르러 대성황을 이루었다. 다리밟기는 달이 떠오르면 그 고장의 큰 다리로 나가 다리 위를 왔다 갔다 건너다니며 달구경을 했다. 열두 다리를 건너든지 한 다리라도 열두 번을 건너든지 하면 그해에는 다리 병이 생기지 않고 튼튼해 진다고 하여 모두 다리를 밟으며 건너다녔다.

예전 거제도에서는 대보름 전날엔 집집마다 콩을 볶아서 맷돌에 갈아 체로 치고, 다시 맷돌에 갈아 체로 고르기를 반복하여, 떡 고물을 만든다고 메로 떡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마을마다 비단오색 다섯 가지 천을 쪼개서 길이 한자쯤 잘라 장독대나 선반, 부뚜막 위에 걸어놓고 ‘할만데‘ 우물에서 깨끗한 생수 물을 떠다가 올렸다.

2월 풍신(風神) 영등신(靈登神)은 주로 영남지방과 제주지방에서 받드는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영등할미’라 부른다. 바람의 신인 영등할미는 곧 풍작과 풍어를 비는 농경시대의 상징적인 의식이었지만, 현대에는 미신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2월에는 집집마다 영등신(靈登神)에게 제사 지낸다"고 하였다. 이것은 비와 바람의 운행을 두고 그 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풍습이었다. 특히 뱃사람들이 정성껏 위한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뱃일이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신령 앞에서 비는 뜻으로 희고 얇은 종이를 불살라서 공중으로 올리기도 한다.

거제도 2월 풍신 제사에는 팥밥을 차려놓고 고사종이를 태웠으며 대보름 새벽에 팥밥과 나물을 만들어 오곡밥과 오곡 나물을 해 먹고 남녀 모두 밥 9그릇을 먹고는, 남자는 나무 9짐을 하고 여자는 삼삼기를 9번 삼았다 한다.

또한 대보름날에 새를 쫓으면 일 년 동안 자기 논에 새가 들어오지 않는다하여 새를 쫓는 행위를 했다. “우리 논에 오질 말고 다른 논에 가~라”, “후~여~ 후~여~” 3번을 반복해 외쳤다. 대보름날엔 반드시 널을 뛰어야 ‘발에 가시가 안 찔리고 발이 강해진다’하여 널을 뛰기도 했다. 그리고 마을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긴하지만, 설날이나 대보름날에 당산제와 마을 대동회를 열었다.

옛날 거제도에는 구렁이가 많아, 담장을 빙 돌고 다니기도 하였고 감나무 위에 올라가기도 하니 부엌에 있던 불 작대기에다 새끼를 감아서 집 앞뒤 한 바퀴 돌면서 “진대 끝자” “진대 끝자” 외치면서 다니는 풍속도 있었다.

예전에 거제도의 집은 대부분 초가집이었다. 그러다보니 썩은 짚에서 냄새나는 노래기가 너무 많았다. “노래기 각시 밥준다” “논 고동 각시 밥준다”고 할머님들께서 바가지에 담긴 소금물을 숟가락으로 뿌리면서 집안과 담장 주위를 다니셨다. 수많은 노래기 때문에 가끔씩 음식물에 노래기가 빠져죽어 있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어른들께서 “노래기는 몸에 나쁜 것이 아니다”고 하시며 그냥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도 대보름날의 최고 행사는 보름달 뜨는 광경을 보려 가는 것이었다. 마을마다 달보는 장소가 예로부터 거의 정해져 있었는데. 뒷동산 동쪽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이었다. 당시 고향마을 뒷산 고개 넘어, 해안 가파른 길을 따라 가다가 바다에 접한 해안에서 마을 선후배들과 달집을 태우면서 소원을 올리고 축원하였던 기억이 난다.

정월 대보름날을 명절로 맞았다는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보인다. 신라의 소지왕(炤知王479~500)이 경주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놀러 나갔다가 쥐와 까마귀, 돼지를 만난 후 불길한 일이 있었으므로 이때부터 매해 정월 첫 ‘돼지날’, ‘쥐날’, ‘말날’에는 모든 일에 조심하여 함부로 출입을 하지 않았으며, 정월 보름날은 까마귀의 제삿날이라 하여 찰밥(약밥)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약밥의 유래에 대하여 말하는 동시에 대보름 명절이 삼국시대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도교에서는 상원(上元)을 삼원대제의 한 사람인 천관(사람에게 복을 주는 신)의 탄생일로 보고, 북위 이후 제일(祭日)이 되었다. 이날 밤에 초롱을 달아 등절(燈節), 원소절(元宵節)이라고도 한다. 이날 달맞이라는 만월제가 행하여졌으며, 사람들은 이날 달의 모습으로 1년의 길흉을 점치고, 각종 소원을 빌었다.

또한 농경예축의례로서의 각종 행사가 이루어졌다. 달은 농경사회에서 여신(女神), 대지(大地), 여성과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달은 농사의 풍요로운 힘, 여성 생산력의 근원 등을 상징한다. 보름밤만은 여자들에게도 밤새도록 통행이 허용되어 해방의 기회이기도 하였다.

한편 이 날에는 청정한 남자를 제주(祭主)로 해서 부락제가 행하여지며, 1년 중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였다.『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을 달맞이라 하며, 먼저 달을 보는 사람이 길하다.”고 하여 소원과 일 년의 풍요를 빌었다. 달맞이는 일종의 월신제(月神祭)라고 하는 주술·종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겠다.

부락제를 지내며 부락을 지켜주는 수호신인 당산제를 이때 지낸다. 이 당산제의 의미는 우리의 국조이신 단군(당골)을 낳으신 환웅님이 신단수 아래 임한 수목숭배 사상의 오랜 제천의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행한 것이라 하겠다. 또한 『동국세시기』에 “이 날 개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다. 개에게 먹이를 주면 향후 파리가 많이 끼고 마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담에 굶는 것을 비유해서 ‘정월 대보름날 개 같다’는 말이 있다.”고 쓰여 있다. 그래서 흔히 굶으며 사는 것을 “개 보름 쇠듯 한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또 더위팔기·달맞이·줄다리기·석전(石戰) 등을 한다. 보름은 새해 농사의 시점이라 하여 농사일과 관계있는 일들을 한다.

1) 정월 대보름 달을 읊다[咏元宵滿月] / 고영화(高永和). 韻字 ‘寒’

夜夜多情白玉盤 밤마다 다정한 흰 옥쟁반 찾다가
南海雙照淚痕乾 남해 바다에서 서로 마주하니 눈물자국이 마르네.
灧灧昇自碧海東 출렁출렁 푸른 동쪽 바다에서 절로 떠올라
皎㓗淸輝玉露寒 깨끗한 달빛이 맑게 빛난 맑은 이슬 차갑구나.

團團月輝海天中 둥글고 둥근달이 바다 위 하늘에서 빛나니
歸帆風便泝前灘 순풍에 돛을 달고 앞 여울 거슬러 돌아 갈까봐
星辰斂彩訝稀踈 별들은 고운 빛깔 숨기어 드문드문 의아한데
婆娑流影飄鬢殘 그림자 떠돌며 가볍게 흐르다 남은 귀밑털에 나부낀다.

萬疊鯨波正杳茫 겹겹이 둘러싼 큰 물결이 정히 아득하고
一輪明月轉淸寒 둥글고 밝은 달은 더욱 맑고 차갑네.
哀惜可憐萬里同 애석하고 가련토다. 만 리가 같을진대
杳然美人會面難 묘연한 님의 얼굴 다시 보기 어려워라.

月色如水流金波 물 같은 달빛이 금빛물결 되어 흐르고
夜景凄凄爽氣歡 밤의 경치 쓸쓸해도 상쾌한 기분 매우 좋다.
花容月態浮海上 꽃다운 얼굴, 달 같은 자태로 해상에서 떠올라
淸光應照美人安 응당 맑은 빛을 님 계신 곳에 비추겠지.

옛사람들은 달과 구름을 보면서 향수와 우정, 사랑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했다. 구름 걷힌 푸른 하늘은 근심 걱정이 말끔히 사라진 비운 마음, 즉 깨달음을 얻는 해탈의 경지를 연결해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밤하늘의 둥근 달은, 원초적인 그리움의 대상으로써, 생명에 영혼을 불어 넣어주고 언제나 우리 곁에서 함께 한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맑고 청량하며 고고한 영혼의 위로와 기원의 대상인 고귀한 심성의 거울이었다.

2) 정월 대보름날 밤[元宵] 三首 / 이춘원(李春元 1571∼1634) 韻字 ‘歌’

庭戶寥寥宜雀羅 정원이 적막하니 새잡는 그물이 어울리고
年光忽忽眼中過 세월은 홀연히 흘러 눈앞에서 지나간다.
鼇山鳳輦眞如夢 오산(鼇山) 봉련(鳳輦)이 진정 꿈속 같은데
嬴得新春白髮多 새해 들어 얻은 것이라곤 백발만 많아졌네.

搖曳香裙六幅羅 나부끼는 향기로운 치마 여섯 폭을 두르고
街頭踏破楚雲過 거리를 걸어가다 보니 초땅의 구름이 지나간다.
樗蒲一博新豐酒 윷놀이로 노름하고 맛좋은 술 먹으며
更待今宵月色多 오늘 밤 달빛이 수북하길 기다린다.

藥飯香醪滿眼羅 약밥(藥飯)과 향기로운 술이 눈앞에 가득 펼쳐있고
紫姑祀罷野烏過 자고신(紫姑神)의 제사가 끝나니 들까마귀 지나간다.
今年不設治聾飮 올해에는 귀밝이술을 차리지 마라.
莫聞人間萬事多 번잡한 세상일은 듣지도 않을 테니....

[주1] 문전작라(門前雀羅) : 문 밖에 새 그물을 쳐놓을 만큼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짐을 뜻하는 말로, 권세가 약해지면 방문객들이 끊어진다는 뜻.

[주2] 오산(鼇山) : 산대(山臺), 산대놀음 따위와 같은 민속놀이를 하기 위하여 큰길가나 빈터에 마련한 임시 무대.

[주3] 봉련(鳳輦) : 꼭대기에 황금의 봉황을 장식한 임금이 타는 가마.

[주4] 신풍주(新豐酒) : 신풍에서 생산되는 아주 맛 좋은 술의 이름이다. 왕유(王維)의 시에 “신풍 땅의 맛 좋은 술 한 말에 만 전이고 함양 땅 유협에는 젊은이가 많네.”하였다.

[주5] 자고신(紫姑神) : 변소의 신(神). 예전에 매년 정월 15일은 ‘상원절(上元節)’로 중국 부녀들이 자고신(紫姑神)에게 제사를 드리는 풍속이 있었다.

[주6] 치롱주(治聾酒) : 귀밝이술, 음력 정월 대보름 아침에 마시는 술로 데우지 않은 청주 한 잔을 마시면 귀가 밝아질 뿐 아니라 1년 동안 좋은 소식을 듣는다고 전해진다. 치롱주란 이름 외에도 명이주(明耳酒), 총이주(聰耳酒), 이명주(耳明酒), 청이주(聽耳酒) 등으로 불린다.

3) 보름달[白玉盤] / 박이장(朴而章 1547~1622)

昨日遊南磵 어제 남쪽 산골짜기 노닐며
重尋白玉盤 거듭 보름달을 찾았다.
此時無一盞 이때 한잔 술이 없으니
何以辦淸歡 어떻게 산뜻한 즐거움 만들까.

4) 달을 읊다[咏月] / 이홍유(李弘有 1588∼1671)

盪海金波動 바다가 흔들려 금빛 물결이 이는데
騰空玉鏡圓 하늘로 떠오르는 옥거울 둥글도다.
騷人今古在 시인과 문사는 옛 모습 그대로인지라
詠月幾成篇 달을 읊조리는 시편을 거의 이루었네.

其二

却訝黃金餠 황금병 같기도 하고
還疑白玉盤 돌이켜보니 흰 쟁반 인 듯,
淸光流萬古 밝은 빛이 만고에 흘러오니
夜夜五更寒 밤마다 새벽 한기 오싹하네.

정월 대보름에 먹는 음식으로는 오곡밥·약식·귀밝이술·부럼·복쌈·진채식 등이 있다. 보름날 자기 나이대로 잣, 호두등 부럼을 깨물며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기를 기원한다. 또 일 년 내내 기쁜 소식만 전해달라며  귀밝이술(耳明酒)을 마신다.

전날 저녁에는 쌀, 팥, 콩, 조, 수수를 넣어 오곡밥을 지어 이웃과 나눠 먹고,  9가지 나물을 삶아서 기름에 볶아 먹기도 한다. 오곡밥은 세 집 이상의 남의 집 밥을 먹어야 그 해 운이 좋다고 하여 이웃 간에  나누어 먹는다. 한편 더위 먹지 않고 여름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 보름날 이른 아침 친구에게 찾아가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고 말하는데 이를 '더위팔기'라 한다.

예전에는 설부터 보름까지 모두가 쉬며 잘 먹고 실컷 노는 날이다. 그래서 우리의 놀이문화, 음식문화, 무속 등이 이때에 함축되어 나타난다. 농악 놀이로 한 해의 풍요와 액막이를 하는 '지신(地神)밟기', '차전(車戰)놀이' 등을 벌이고, 한 해의 나쁜 액을 멀리 보내는 의미로 연줄을 끊어 하늘에 연을 날려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달집태우기’라 하여 자그마한 달집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았다가 달이 떠오를 때 태웠다.

대보름날 저녁에 하는 들불놀이, 쥐불놀이, 횃불놀이라는 것은 횃불을 켜들고 들판에 나가 논두렁이나 두렁의 잡초와 잔디를 태워버리는 것이었다. 불이 잘 붙는 싸리나무에다 삼대를 섞어 횃대를 만들어 가지고 거기에 불을 달아 들고 논밭으로 나가 잡초를 태우며 놀았다. 이것은 겨울난 들쥐, 메뚜기 알, 해충의 번데기, 돌피와 잡초 씨 그 밖의 나쁜 것들을 태워버리는 유익한 놀이었다. 이때 태워버린 잡초의 재는 논밭의 거름이 되었고, 새 풀은 잘 돋아나 농작물을 보호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5) 갑진년 정월 대보름에[甲辰上元] / 신흠(申欽 1566∼1628)

龍鍾三十九 불우한 세상살이 삼십 구년 째에
佳節上元時 좋은 명절 정월 대보름이라
柏酒開新釀 백주는 새로 빚은 항아리서 떠내고
桃符飾舊楣 도부는 옛 문지방에 붙이었네

光陰那得駐 세월을 어찌 머물게 할 수 있으랴
世事只堪悲 세상일은 다만 슬플 뿐이라
强作迎春樂 억지로 봄맞이하는 즐거움 짓노니
還憐鏡裏絲 도리어 거울 속의 백발이 애처롭네

[주1] 백주(柏酒): 잣나무 잎으로 담군 술이다. 잣나무 잎(柏葉)으로 술을 답갔다가 정월 초하룻날 액운(厄運)을 물리치는 뜻에서 먹는 술을 말한다.

[주2] 도부(桃符) : 복숭아 나무에 귀신을 쫓는 신의 이름이나 상을 그려 복을 비는 것에서 기원한다.

6) 해월편[海月篇] 바다에 뜬 달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거제면 앞바다를 보며.

海月生海底 바다에 뜬 달은 바다 속에서 생겨나
蕩漾雲水間 구름과 물 사이 출렁대며 움직인다.
磨出靑銅鏡 청동 거울을 돌로 갈아 내어놓고
琢成白玉盤 옥을 다듬어 둥근 보름달이 되었다네.

初愁海氛沉遠浦 처음 바다 기운에 괴로워 먼 포구가 침울한데
稍喜瘴霧開羣山 장기 서린 안개가 여러 산을 열어 점차 즐거워지구나.
萬疊鯨波正杳茫 겹겹이 둘러싼 큰 물결 정히 아득하고
一輪蟾光轉淸寒 둥근 달빛 맑고도 차게 나부낀다.

魍魎竄伏移深樹 도깨비가 깊고 무성한 숲으로 옮겨가 숨고
魚龍驚起叫層瀾 어룡이 깜짝 놀라 일어나니 층층 물결 일으켜 부르짖는다.
灧灧升自碧海東 출렁출렁 푸른 바다 동쪽으로 절로 물결 일어
團團迥在靑天中 둥글고 둥근달 푸른 하늘 중에 빛나고 있도다.

皎㓗淸輝洗玉露 깨끗한 달빛이 맑게 빛나니 구슬 같은 이슬로 씻었는가?
婆娑流影飄金風 그림자 떠돌며 가볍게 나부끼다 가을바람에 떨어진다.
星辰斂彩訝稀踈 별들은 고운 빛깔 숨기며 드문드문 의아한데
河漢無光但曈曨 은하수 빛이 없어지니 먼동이 튼다.

纖雲卷盡六合澄 잔 구름 둘둘 말다 사라지고 여섯 번 합하다 맑아지니
永夜嬋娟掛長空 긴긴 밤 아름다워서 높고도 먼 하늘에 걸려있네.
天涯地角遍一照 하늘 끝과 땅의 귀퉁이에 두루 한번 비추니
可憐明明萬里同 가련하다, 만 리가 또렷이 같을진대..

萬里迢遙隔美人 만 리 멀고 먼, 임의 얼굴 막고 있어
月下徘徊望北辰 달빛아래 배회하다 북극성을 바라본다.
長安宮闕五雲裏 서울의 궁궐은 오색구름 가득하고
正値中秋天氣新 때마침 추석이라 날씨 한번 맑겠구나.

眞珠簾箔光相射 진주 발이 내려 빛을 서로 내뿜고
雲母屛風影無迹 운모로 만든 병풍엔 그림자 자취 없도다.
複道層楹皆照耀 높은 기둥사이 복도에 두루 비추어 빛나며
萬戶千門明月色 수많은 백성의 집엔 달빛 밝구나.

月色如水流金波 달빛은 물처럼 금빛물결 되어 흘러서
夜景凄凄爽氣多 밤의 경치 쓸쓸해도 상쾌한 기분 매우 좋다.
炎荒此夜凉亦深 더운 지방이라, 이날 밤은 서늘하게 깊어가니
玉樓高處寒如何 높은 곳의 아름다운 누각은 어찌됐든 쌀쌀하다.

玉樓炎荒途路綿 더운 지방 아름다운 누각이 길가로 이어지고
唯有孤月往復旋 오직 외로운 달만 왔다갔다 돌아오네.
離人秋來別恨苦 떠난 사람 하필 가을에 도착해, 이별의 한이 괴로워
對月悲歌不能眠 달 보며 슬픈 노래 부르니, 끝내 잠 못 들고나.

歸魂願得逐月華 내 마음은 돌아가길 바라는데, 달빛이 쫓아와선
夜夜遙照玉樓邊 밤마다 저 멀리 아름다운 누각 모퉁이를 비춘다.

예로부터 둥근 보름달을 지칭하는 단어는 참 많다. 만월(滿月), 영월(盈月), 망월(望日), 옥륜(玉輪),옥반(玉盤) 등으로 불리었고 비유적인 표현으로는 청동 거울(靑銅鏡), 흰 옥 쟁반(白玉盤), 바퀴 같은 둥글고 밝은 달(一輪明月) 등이 있다.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에서 1689년부터 1694년까지 귀양살이 했던 김진규(金鎭圭) 선생은 유배 온 첫 해, 거제면 앞바다에 뜬 둥근 보름달을 보고 감회에 젖어 위 시편을 완성했다.

시적 화자인 선생이 읊조리길, “이 밝고 밝은 달빛이 온 누리에 비추고 있으니 구중궁궐과 고향집 앞마당에도 똑같이 뚜렷이 비추리라. 보고픈 가족의 얼굴 떠오르지만 달빛이 너무 고와서 산뜻한 기쁨을 느낀다. 이별의 정한 속에 선생의 마음은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하나 달빛이 자꾸 쫓아와서 여기저기 비추며 희롱한다.”

 


고영화 선생은 1963년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에서 태어난 향토사학자이자 고전문학 전문가이다. 경북대학교를 졸업했고 고전문학, 특히 유배문학을 집대성하고 있으며 2014년 1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자신의 조사, 연구결과를 거제시에 기증해 <거제도유배고전문학총서>로 발간하게 했다. 다수 지역언론에 거제 고전문학과 향토사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강연과 출판 활동으로 거제 고전문학을 널리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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