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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 정승과 잡채 판서
더덕 정승과 잡채 판서
  • 거제뉴스광장1
  • 승인 2015.03.2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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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더덕 정승의 권세가 중하더니,
이제는 잡채 판서의 세력 당할 자 없구나.

沙參閣老權初重, 雜菜尙書勢莫當.
사삼각로권초중, 잡채상서세막당.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11년 3월 5일

[해설]
더덕은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던 작물로, 중국에서는 주로 약으로 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구이ㆍ무침 등 식재료로도 애용했습니다. 잡채 역시 예로부터 명절이나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맛난 먹거리죠. 그런데 이 더덕과 잡채에 정승이니 판서니 하는 높은 벼슬 이름이 붙어 있으니 얼핏 보면 아리송합니다.

광해군 시절에 한효순(韓孝純)이란 사람은 좌의정까지 올랐는데, 세간에서는 그가 임금에게 더덕을 넣은 꿀떡[蜜餠]을 바쳐서 정승 자리를 얻었다고 수군댔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는 떡이길래 그 높다는 정승 자리까지 얻을 수 있었을까요? 왠지 모르게 입가에 군침이 돌기도 합니다. 한편 이충(李沖)이란 사람은 요리를 얼마나 잘했는지 광해군은 꼭 그가 만든 반찬이 상에 올라야만 수저를 들었다고 하죠. 특히 신선한 각종 채소를 섞어서 만든 잡채 요리가 그의 주메뉴였다고 합니다. 요리 솜씨 덕분에 이충은 광해군의 총애를 무던히도 많이 받았고 벼슬이 호조 판서까지 이르렀지만, 백성들은 그를 ‘잡채 판서’라 부르며 조롱했습니다.

위에 나오는 더덕 정승과 잡채 판서 이야기는 당시 민간에 떠돌던 노래가 실록에까지 실린 것입니다. 위 이야기는 실록뿐만 아니라 신흠(申欽)의 『상촌집(象村集)』,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도 전해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더덕 정승’ 대신에 ‘김치 정승[沈菜政丞]’이라고 소개되고 있죠. 더덕이든 김치든 간에 분명한 것은 이들이 정승감, 판서감이 아닌 인물임에도 결국 뇌물을 바친 덕에 고관대작의 지위를 누리며 백성들의 원성과 조롱을 샀다는 것이죠. 요즘으로 치면 '한식대첩'에서 요리 솜씨를 뽐낼 인재들이 그만 국정(國政)을 요리하는 높은 지위를 차지한 격입니다.

더덕 정승이든 잡채 판서든 간에 이들이 임금을 잘 보좌하여 어진 정치로 인도했다면 사람들의 뒷공론도 그리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기에 이들은 결국 후대에 이런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남고 말았죠. 광해군은 임진왜란으로 불탄 도성의 여러 궁궐을 중건(重建)하기 위해 무리하게 토목 공사를 벌였다가 인심을 많이 잃었는데, 이때 호조 판서로 있던 이충이 공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앞장서서 백성들을 수탈했다고 합니다. 옛말에 “백성을 수탈하는 신하를 곁에 두느니 차라리 도둑질하는 신하를 곁에 두는 게 낫다.[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광해군이 요리 솜씨에 현혹되어 사람을 몹시나 잘못 고른 셈입니다.

요즈음 고위 공직자를 비롯해 일정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청탁을 일삼는 것을 금하도록 한 이른바 ‘김영란 법’의 국회 통과를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그 옛날 임금에게 바쳐진 더덕 꿀떡과 잡채의 맛은 달콤했지만, 이로 인해 이 땅의 백성들은 안타깝게도 쓰디쓴 혹정(酷政)에 신음해야 했죠. 부디 이를 거울삼아 이번에는 제대로 된 법이 시행되어 우리나라에 뿌리 깊은 그릇된 청탁의 문화가 자취를 감추기를 기원해 봅니다.

글쓴이 : 허윤만(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 이 글은 '한국고전번역원'의 허가를 얻어 <거제뉴스광장>에 게재하는 것입니다.

-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www.itkc.or.kr)에서 더 많은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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