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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병산에 가을이 내렸다.
북병산에 가을이 내렸다.
  • 방미자 시민기자
  • 승인 2014.11.11 03: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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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과 대화하고 자연에 말을 건네다
▲ 북병산에 가을이 내렸다.

계절이 나무의 새잎을 틔어 봄을 알려주면 그것은 연록의 설렘이다. 이제 그 잎이 물들면 눈이 시린 아름다움이다.

단풍은 잎이 기능을 멈추면서 엽록소가 파괴되고 자가 분해하는 과정이다. 안토시안이 생성되는 수종은 잎이 붉거나 갈색으로 변하고 그렇지 않은 나뭇잎은 노랗게 물든다 한다. 자기 것을 내려놓음으로 타인에게 즐거움을 주는 생명의 존귀함은 같은 생명체인 인간에게 ‘버리라’재촉한다. 나도 저리 붉게 물들어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주고 그 잎을 내려놓아 겸손해 질 수 있을까?

난 요즘 산에 자주 간다. 나이 40이 훌쩍 넘도록 산에는 잘 오르지 않던 내가 진땀을 빼고 산등성이를 넘어 가는 이유는 무어라 설명하기 어렵다. 그저 설레면 그뿐. 발등에 감겨드는 등산화는 나의 말벗이자 동료가 된지 오래되었다.

등산가 조지 맬러니가 그랬다지. “그곳에 그것이 있기 때문!” 삶을 수단으로 보지 않는 자세, 과정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 산은 그렇게 산에 오르는 사람을 일깨운다. 언젠가 나도 그리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나는 오랫동안, 어쩌면 지금까지도 삶을 두려워한다. 크고 작은 상처와 좌절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산을 오르면서 나는 내가 변함을 느낀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솔직한 내 마음을 만날 수 있고, 내 마음과 대화할 수 있다. 산은 누구도 대신 올라가 줄 수 없는 곳이기에 나를 믿고 나와 대화하며 가야 한다.

오늘 나와 친구들은 거제도의 10대 명산 중 하나인 북병산(465.4m)을 오른다. 단풍 구경이 큰 목적이긴 하였지만 말하지 않아도 오고가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 씀씀이를 더 느끼고 싶은 심산이었음이 분명하다. 심원사에서 시작한 산행은 북병산 정상으로 돌아나오는 짧은 여정이었다.

인생이 짧다고 그 의미가 덜한 것이 아니듯이 짧은 산길이라고 산의 느낌이 덜하지 않다. 이미 가을 단풍은 마을을 향해 질주하고 꼭대기는 맨몸의 가지만 드러낸 차가운 풍경이다. 정상은 말하기를 자신은 볼품이 없으니 멀리보라 하고, 우리의 눈은 아름다운 해안선과 병풍처럼 둘러친 산줄기를 훑어 내린다. 자연의 품이 넓다는 것은 정상에서 뻗어 내려간 계곡이며 능선이 품고 있는 장면을 보고서야 마음에 다가온다.

우리 거제노무현재단의 산행은 늘 그렇듯이 느리게, 천천히 걷는다. 거리는 짧아도 산행시간은 길어진다. 한 달에 한번 산행을 모임으로 만나다보니 그렇게 산을 잘 오르지도 못한다. 타고난 체력이나 오랜 경험이 몸에 밴 사람들이 없지는 않으나 대부분은 이런 모임 말고는 산에 오를 일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다. 앞서가는 사람들은 뽐내지 않고 속도를 늦추거나 손 내밀어 당겨주고 뒤에 오르는 이들은 고마워하며 힘을 얻어 걸음을 재촉한다. 그렇게 산은 우리에게 도울 것을 일러주고 함께여야 함을 상기시켜준다. 그리 급할 것도, 그리 목매어 쟁취할 것도 없는 아늑한 발걸음이 산에 오르는 걸음이다.

산행에는 자연에게 말을 건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도 그렇게 물들어가는 단풍 길을 걸으며 따스한 햇살과 대화하고, 감탄하고, 예쁘다, 얘기해준다. 동행한 서로의 모습을 보며 사진도 찍어주고 노랫가락에 둘러 앉아 도시락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이곳에서는 ‘이번 달에 얼마나 벌었어요?’가 ‘이번 달 버느라고 얼마나 힘드셨어요?’로 바뀌는 마법이 일어나기도 한다.

재단 산행은 이렇듯 늘 포근하다. 가끔 얼굴을 보지만 만나면 미소가 자연스럽게 피어난다. 서로 치장하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다. 산 정상을 밟지 않아도 그 길을 같이 걸으면 든든하다. 서로를 보며 걸으니 발아래 꽃도 보이고 풀벌레도 보인다. 짧은 순간 배부르고 행복하다.

북병산에 가을이 내렸다. 이 가을,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 산은 나와 내마음이 대화하는 법을 일러준다.
▲ 단풍잎, 햇살, 헐벗은 나무가 반기면 고맙다, 예쁘다 답장을 보내야 한다.
▲ 급할 것도, 쟁취할 것도 없는 아늑한 발걸음이 산행이다.
▲ 꼭대기는 자신은 볼품없으니 멀리보라 한다. 망치마을을 둘러싼 능선이며 해안선이 눈길을 품는다.
▲ 뽐내지 않고 손내밀고, 고마운 마음으로 힘을 얻는다. 짧은 순간 행복하다.

 

 



방미자 시민기자는 주부이자 거제노무현재단 운영위원이다. 산과 대화하는 것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부드러운 ‘산행대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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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롱불 2014-11-12 10:52:55
멋집니다.